스트롱코리아 포럼2020…양자컴퓨터 시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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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컴보다 수십억 배 빨라
DNA 등 유전체 분석 특화
美·日 등 개발전쟁…韓 가세
양자컴퓨터는 양자물리학의 원리를 적용한 신개념 컴퓨터다. 비트(0 또는 1) 단위로 계산하는 기존 컴퓨터와 달리 큐비트(0이면서도 1) 단위를 이용해 정보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양자컴퓨터 개발엔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삼성전자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게임 체인저’를 노리고 모두 뛰어들었다. 김재완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는 “신약을 설계하거나 방대한 임상 정보에서 최적의 맞춤형 치료법을 최단 시간 내 찾아내는 데 양자컴퓨터가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양자컴퓨터는 수조 개에 달하는 인체 내 세포와 단백질, DNA 등의 상호작용 분석에서 슈퍼컴퓨터보다 월등한 성능을 자랑한다. 구글은 지난해 10월 양자컴퓨터 시커모어를 내놓으며 일반 슈퍼컴퓨터보다 15억 배 빠른 성능을 지녔다고 발표했다. 구글이 미 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2015년 12월 ‘(슈퍼컴퓨터보다) 1억 배 빠른 컴퓨터’라고 소개한 지 4년이 채 안 돼 연산 성능이 15배 뛰었다. 시장조사업체 마켓리서치퓨처에 따르면 세계 양자컴퓨터 시장은 지난해 8억200만달러에서 2023년 28억2200만달러로 5년 새 세 배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은 2018년 백악관 주도로 ‘국가 양자이니셔티브’ 법안을 제정하고 산·학·연·관을 총동원해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고 있다. 일본 역시 문부과학성 주도로 양자컴퓨터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슈퍼컴이 8억년 걸려 푸는 문제, 양자컴은 1초 안에 해결
암 치료제 개발·자율주행·물류 혁명 앞당긴다인류가 직면한 난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되는 첨단 인공지능(AI) 기술의 특징은 ‘빅데이터 최적화’로 요약된다. 우주탐사, 교통·물류 혁신, 자율주행차, 기후변화 예측, 통신 네트워크 기술 등은 AI를 토대로 발전하고 있다. 검색엔진도 마찬가지다. 신약개발은 최단시간 내 분자 또는 그 이하 미세구조를 최적 분석하는 것이 관건이다.양자컴퓨터는 AI와 동전의 앞뒤 관계인 빅데이터 최적화 문제를 가장 잘 풀 수 있는 ‘꿈의 컴퓨터’다. 최적화 문제는 답을 찾아가는 확률 문제다. 양자컴은 이런 점에서 ‘가장 잘 찍는(답을 유추하는) 컴퓨터’라고도 한다. 양자컴 원천기술 보유자인 니시모리 히데토시 일본 도쿄공업대 교수는 “신약개발 등 최적화 문제에서 4~5년, 혹은 그 이상을 내다보고 압도적인 우위를 선점하려는 기업들이 양자컴을 개발하거나 투자하고 있다”며 “미래 AI 기술은 양자컴으로 완성될 것”이라고 했다.
신약 개발 기간 획기적 단축 기대
양자컴의 성능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최적화 문제가 ‘총알배송’이다. 택배기사가 회사에서 출발해 하루 5곳을 돈다고 하면 가능한 경우의 수는 120가지(5×4×3×2×1)다. 이 중 최단거리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배송지가 늘어날 때마다 경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10곳이면 362만8800가지(10×9×…×2×1), 15곳이면 1조3076억7436만8000가지다. 15곳까지는 현존 슈퍼컴퓨터로 0.001초 안에 최단거리 계산을 끝낼 수 있다.그러나 30곳이 되면 슈퍼컴퓨터로도 8억4000만 년 이상 걸린다. 구글이 지난해 공개한 ‘15억 배 빠른 양자컴 시커모어’를 쓰면 30곳 총알배송 문제를 1초도 안 돼 풀 수 있다. 양자컴이 신약개발을 앞당길 것으로 기대되는 것은 이런 연산 능력 때문이다. 양자컴을 쓰면 수십억 개의 염기쌍으로 구성된 DNA, 수조 개의 인체 세포에 작용하는 경우의 수를 파악할 수 있다.
총알배송 문제는 가로축을 배송지(A, B, C…), 세로축을 방문 순서(1, 2, 3…)로 정한 행렬 형태로 나타낼 수 있다. 이 행렬 각 항을 큐비트로 대응시키면 바둑판 같은 격자 모형(아이징 모형)이 된다. 양자컴 칩세트(프로세서)를 뜯어보면 이 격자 모형으로 돼 있다. 격자 모형은 함수로 나타낼 수 있고, 이 함수의 최솟값을 구하는 것이 바로 양자컴퓨터의 연산 결과다.
美 록히드마틴이 처음 양자컴 도입
양자컴 구동방식은 크게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으로 나뉜다. 최초의 상용 양자컴인 미국의 D-웨이브가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동한다. 아날로그 양자컴은 ‘극저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 자석’을 활용한다. 분자구조 시뮬레이션(양자화학)에 특화돼 있다. 나이오븀 등 초전도 금속으로 만든 반지 모양 회로를 영하 273도에 가깝게 냉각하면 좌우 방향으로 회오리치듯 전류가 흐른다. 이때 전류의 방향으로 양자컴의 기본 연산단위인 큐비트를 구현하고, 큐비트 간 얽힘을 조절하면서 최적화 문제의 해답을 찾아낸다. ‘양자컴용 트랜지스터’인 조셉슨 소자도 들어간다.
최초의 상용 양자컴은 2011년 미국 록히드마틴사가 도입한 아날로그 방식의 ‘D-웨이브 1’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구글이 2015년 말 “1억 배 빠른 양자컴”이라고 소개한 것은 ‘D-웨이브 2X’다.
각국 정부, 양자컴 개발 총력
미국은 2018년 양자컴 분야 글로벌 주도권을 쥐기 위해 ‘국가 양자이니셔티브(NQI)’ 법을 제정한 뒤 NASA, 국방부, 국립과학재단(NSF), 국가안보국(NSA), 정보고등연구기획국(IARPA),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매사추세츠공대(MIT), 스탠퍼드대 등이 총출동해 양자컴을 개발 중이다. 영국도 2014년 총리 직속 공학및자연과학연구위원회(EPSRC) 주도로 국가양자기술프로그램을 가동하고 3억4200만달러를 투자했다. 일본도 문부과학성 주도로 슈퍼컴퓨터를 능가하는 양자컴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2023년까지 5큐비트급 양자컴퓨팅 실증 기술 개발을 목표로 445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국내에선 삼성전자종합기술원과 삼성SDS, 현대자동차, LG전자 등이 양자컴 선행 연구를 하고 있다.
■ 양자컴퓨터고전 컴퓨터의 비트(0 또는 1) 대신 큐비트(0이면서도 1)로 연산하는 신개념 컴퓨터. 고전 컴퓨터의 비트 10개는 2를 10번 곱한 ‘1024가지’ 경우의 수를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의 수 가운데 최적값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한 번에 하나씩 1024번 연산을 반복해야 한다. 반면 양자컴퓨터의 큐비트 10개는 1024가지 경우의 수 연산을 한 번에 끝내면서 최적값을 찾아낼 수 있다. 따라서 경우의 수가 무한대로 많은 빅데이터 연산, 특히 바이오 기술 분야에서 유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