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병원이 신약 개발의 혁신 거점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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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만으론 신약개발 역부족국내 제약기업이 내수·제네릭(복제약) 중심에서 신약 연구개발로 체질을 개선하면서 국내 제약산업의 세계시장 진출이 늘고 있다. 국내 제약기업의 연구개발은 해마다 강화돼 지난해 72개 상장 제약·바이오기업의 연구개발비 지출은 1조5434억원으로 전년 대비 10.1% 증가했다. 매출액 대비 8.2%다. 연구개발 투자와 체질 개선에 힘입어 1999년 국산신약 1호가 탄생한 이후 지난해까지 31호 신약이 개발됐다. 2003년 이후 국내 개발 의약품 23개 품목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으며 16개 품목이 유럽 의약청(EMA) 허가를 획득했다. 의약품 수출은 지난해 52억달러, 최근 5년간 연평균 14.2% 늘었다. 기술수출 계약도 2018년 5조4000억원에 이어 지난해에는 바이오벤처 4곳에서만 5조2000억원의 기술수출 계약을 이뤄냈다.
인력·경험 많은 병원 역할 늘리게
기술지주사 설립 등 규제 완화를
김상은 < 분당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미래융합협의회 회장 >
하지만 국내 의약품 시장은 세계 시장의 2% 미만으로 매우 작으며, 연구개발비 투자도 세계 투자액의 1% 미만이다. 2018년 국내 상위 5개 제약기업의 평균 매출(1조641억원)은 세계 상위 5개 제약기업 평균(64조7825억원)의 1.6%에 불과하다. 평균 연구개발비도 1732억원으로 세계 상위 5개 제약기업 평균(10조643억원)의 1.7%밖에 안 된다. 국내 제약기업 대부분은 막대한 개발 비용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고 높은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지니는 전통적인 신약개발 방식을 감당할 규모에 미치지 못한다. 이런 관점에서 신약개발의 이상적인 선순환 구조라고 할 수 있는 학계(기초연구 및 후보물질 탐색)→바이오벤처(후보물질 개발 및 기술사업화)→제약기업(기술이전 및 임상시험)으로 이어지는 가치사슬 연결이 적어도 우리에게는 비용과 시간 양면에서 모두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여기에 병원이 주요 참여자로 자리 잡아 효율을 높여야 한다.국내 대학병원급 병원들은 진료 일변도 운영에서 벗어나 연구·진료 균형 또는 연구 중심 체계로 전환하고 있다. 이들 병원에는 임상 진료 의사와 함께 의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박사급 연구자만 18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의과학 기초·응용·개발 연구에 필요한 시설 및 장비를 최첨단급으로 갖추고 있다. 질좋은 보건의료 데이터와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인적, 기술적 역량도 지니고 있다. 아울러 의료 제품과 서비스의 최종 사용처인 의료 현장, 즉 병원은 미충족 수요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곳이다. 우수한 연구 인프라와 풍부한 임상적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병원을 신약개발의 혁신 거점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신약이 탄생하기까지 후보물질 탐색→비임상시험→임상시험→의약품 허가 심사의 과정을 거친다. 현재의 신약개발 체계에서 병원은 주로 임상시험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역할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병원은 신약개발의 다양한 가치사슬 단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임상시험뿐 아니라 기초연구·임상 실용화 연구 사이의 중개연구와 역(逆)중개연구, 나아가 후보물질 탐색과 발굴 등에 병원이 갖고 있는 연구 인프라와 연구 역량을 능동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바이오벤처 및 제약기업과의 협력과 경쟁을 모색해야 한다.
세계 의료·바이오 시장은 8조달러 규모로 정보통신산업의 2배다. 이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0.8%에 그친다. 한국의 세계 의료·바이오산업 비중을 지금의 10배 규모인 8%로 끌어올리고 국내총생산의 30%를 달성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병원이 신약개발의 혁신 거점이 돼 제약산업 강소국으로 도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병원의 기술지주회사 설립, 기술이전 수익의 병원 재투자 등 관련 규제 완화에 나서고 병원은 전문가 정신과 혁신으로 무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