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 상장사 高평가 논란…10곳 중 9곳 '실적 뻥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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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社 중 45社 지난해 실적이게임업체 넵튠은 2016년 대신밸런스1호스팩을 통해 상장했다. 이 회사는 스팩과의 합병 당시 주당 17만6042원으로 평가받았다. 2016년 50억원, 2017년 228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이란 전망을 기초로 한 평가였다. 미래 수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수익가치)할 때도 역대급 가중치를 얹어 계산했다. 하지만 실제 영업이익은 모두 적자였다.
합병 당시 수익 전망치 밑돌아
넷게임즈·이디티 등 13社는 적자
스팩(SPAC)은 우량 장외기업의 합법적 우회상장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된 기업인수목적회사다. 하지만 장밋빛 실적 전망을 토대로 기업가치를 ‘뻥튀기’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10곳 중 9곳의 실적은 전망치를 밑돌았다. 스팩 특례규정을 악용해 기존 주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관행 때문이라는 분석이다.10곳 중 9곳 ‘실적 뻥튀기’
2015년부터 스팩 상장을 승인받은 51개사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실적이 합병 당시 제시한 수익 전망치에 미치지 못한 기업이 45개에 달했다. 기업가치를 크게 부풀린 곳도 적지 않았다. 넷게임즈 이디티 모비스 등 13개사가 전망과 달리 손실을 냈다. 디알텍 네오셈 에치에프알 등 9개사는 영업이익이 전망치보다 100억원 이상 적었다.
2017년 상장한 모비스(하나금융8호스팩)는 지난해 영업이익 51억원을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받았지만 영업손실 15억원을 냈다. 네오셈(대신밸런스제3호스팩)도 상장 첫해인 지난해 전망치(115억원)를 크게 밑도는 영업손실 34억원을 기록했다.작년 4분기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면서 그해 실적 추정치를 부풀려 잡은 사례도 있었다. 네온테크(DB금융6호스팩)는 지난해 11월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 작년 영업이익을 61억원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실제 영업이익은 14억원에 그쳤다. 애니플러스(미래에셋대우2호스팩)도 2019년 영업이익을 29억원으로 전망했지만 14억원에 그쳤다.
상당수 스팩 주가는 합병 기대로 급등했다가 실적 발표 후 급락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넵튠 주가는 우회상장 직후 2만원을 넘었다가 현재 5000원대까지 떨어진 상태다.
스팩 ‘합병 특별대우’ 무색
장외기업들은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토대로 주당 가격을 산정한다. 기업의 본질가치는 현재 자산가치보다 미래 수익가치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어 수익가치에 가중치를 둔다. 다만 수익 전망에 따라 수익가치가 고무줄처럼 변하기 때문에 자본시장법에선 자산가치와 수익가치 가중치를 1 대 1.5로 고정해놨다. 하지만 스팩 합병은 특례규정을 적용받는다. 수익가치 산정을 자율에 맡긴다. 성장성 높은 장외기업을 합병하기 위한 취지다.
스팩과의 합병이 승인된 51개사 가운데 17개사가 수익가치의 1.5배가 넘는 가중치를 적용받았다. 넵튠은 스팩 가운데 가장 높은 12배, 모비스도 8.2배 가중치를 둬 본질가치를 산정했다. 하지만 17개사 가운데 클래시스 해마로푸드 2개사만 전망치를 웃도는 실적을 냈다.성장성을 높이 평가한 합병 사례는 계속 나오고 있다. 신한제4호스팩과 13일 합병을 결정한 자율주행차 시스템 업체인 에스더블유엠은 수익가치에 11배의 가중치를 적용했다.
한 벤처투자회사 임원은 “스팩 우회상장 기업은 정식 기업공개 절차를 밟기 쉽지 않은 곳들”이라며 “성장성이 뛰어난 기업도 있지만 상당수는 기존에 투자받은 단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평가받기 위해 수익가치를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스팩 합병 비율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한 건 시장이 이를 걸러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전문가는 “장외기업 평가를 맡은 회계법인은 고객(기업)이 요구하는 합병 비율대로 평가보고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스팩 주주들이 합병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대부분 단기 차익에만 관심이 있어 주식매수청구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스팩비상장기업의 인수합병을 목적으로 하는 페이퍼 컴퍼니(명목상 회사). 다수의 개인투자자금을 모아 상장한 후 3년 내로 비상장 기업을 합병해야 한다. 합병이 실패하면 주주에게 원금에 3년치 이자를 더해 지급한 뒤 해산하게 된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