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까지 '중증환자' 만드는 오염된 정보·가짜 뉴스

시네마노믹스
(6) 컨테이젼 (下)

남 배려하는 마음이 전염병·경제 방어하는 '합리적 백신'
‘컨테이젼’ 같은 재난 영화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현상이 있다. 잘못된 정보가 사회에 빠르게 퍼지는 ‘인포데믹(정보 감염증)’이다. 인포데믹은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의 유행(epidemic)을 합친 단어다. 인포데믹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미국 전략분석기관 인텔리브리지의 데이비드 로스코프 회장이다. 그는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유행했던 2003년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인포데믹은 한번 생기면 곧장 대륙을 넘어 전염된다”고 설명했다.

가짜뉴스가 전염병처럼 빨리 퍼져
‘컨테이젼’에서도 감염병을 둘러싸고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수없이 돌아다닌다. 방송 뉴스의 앵커가 인터뷰를 위해 출연한 질병통제예방센터 관계자에게 “인도의 한 약이 치료 효과가 있는데 미국 정부가 발표를 막고 있다는 소문이 진짜냐”고 묻는다. 아시아와 남미에서는 ‘미국과 프랑스가 백신을 이미 개발했지만 아시아에 주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지며 세계보건기구(WHO)의 전문가와 과학자들이 납치된다.

영화에는 혼란을 이용해 일부러 ‘가짜뉴스’를 퍼뜨려 부당한 이득을 얻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프리랜서 기자 앨런 크럼위드(주드 로 분)는 블로그에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가 개나리액을 먹고 나았다며 거짓 영상을 찍어 올린다. 이를 믿은 수많은 사람은 개나리액을 사기 위해 약국에 줄을 선다. 그러나 판매 수량이 부족해 폭동이 발생한다. 크럼위드는 개나리액 사기를 통해 450만달러(약 55억원)를 챙기고 백신이 개발된 뒤에도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리다 증권 사기 및 범죄 모의 등의 혐의로 수사당국에 붙잡힌다.한국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며 인포데믹 현상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경기 성남시 은혜의 강 교회에서 ‘소금물이 코로나19 예방에 좋다’는 잘못된 정보를 믿고 교회 신도들의 입에 분무기로 소금물을 뿌린 사건이 대표적이다. 경기도에서는 인터넷을 보고 방역을 위해 공업용 알코올인 메탄올을 뿌려 일가족이 중독되기도 했다.

트럼프의 살충제 인체 주입 발언 ‘논란’

인포데믹이 책임 있는 정부 당국자의 발언에서 나온다면 더욱 파장이 클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백악관 정례브리핑을 하던 도중 “우리 몸에 엄청난 양의 자외선을 쪼이거나 주사로 살균제를 주입하면 어떨까”라는 황당한 제안을 했다. 빌 브라이언 국토안보부 과학기술국장이 실내 온도를 화씨 70∼75도(섭씨 21.1∼23.8도), 습도를 80%로 맞추면 바이러스가 물체 표면에서 2분밖에 못 버텼다는 정부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표백제는 5분 안에 바이러스를 죽이고, 살균제는 30초 안에 죽인다”고 말한 직후다.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보도되면서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비난이 빗발쳤고, 트럼프 대통령의 브리핑에 동행한 브라이언 국장은 독성이 있는 살균제를 주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 사위’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살충제 주입 발언 후 메릴랜드주의 응급 상담전화 코너에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살균제 제품을 인체에 주입하거나 복용하는 게 가능한지 묻는 전화가 쇄도했다며 “사실에 기반한 기자회견을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말라리아 예방·치료제 클로로퀸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별다른 근거도 없이 코로나19 치료제로 홍보한 뒤 “제약 역사상 가장 큰 게임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두 약의 처방 건수가 평일 평균보다 114배 뛰는 등 수요가 급증했다. 하지만 클로로퀸이 코로나19 중증환자 치료에 전혀 효과가 없다거나 아예 사망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와 트럼프의 발언을 무색하게 했다.

선한 이들의 연대에서 피어나는 희망영화 초반부터 과학자와 의료진, 정부 관계자들은 백신을 갈망했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야 개발된 백신이 시민들에게 공급되고 사회의 혼란은 차츰 수그러든다. 영화 속 첫 희생자의 남편인 토머스 엠호프(맷 데이먼 분)는 고등학생 딸의 남자친구가 백신을 맞은 뒤 그를 집으로 초대해 조촐한 졸업 파티를 열어준다.

그러나 백신이 이 영화에 나오는 유일한 희망은 아니다. 초유의 재난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정부기관의 과학자는 백신을 빨리 개발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의 몸에 임상시험을 했다. 한 민간 연구자는 사태 초기에 바이러스를 배양한 뒤 대형 제약사의 제의를 뿌리치고 정부에 무료로 기증했다. 질병통제예방센터 소속 에리스 치버 박사(로런스 피시번 분)는 자신 몫으로 먼저 받은 백신을 센터 청소부의 아들에게 투여했다.

감염병이 창궐해 수많은 이가 죽어 나가고 국가가 희미해진 극한의 상황. 이를 버텨내고 결국 극복하는 힘은 사재기 같은 개인의 이기적인 선택이 아니라 이타심과 희생이라는 점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게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위기에 빠진 대구에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어렵게 구한 마스크를 택배 기사와 저소득층을 위해 선뜻 내놓은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노유정 한국경제신문 기자 yjroh@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인포데믹도 각 개인이 정보를 빨리 취득해 대응하려 한다는 점에서 ‘합리적 선택’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② 한국 방역당국처럼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이 코로나19에 대해 투명하고 빠른 공개로 대응했다면 전염병 확산을 상대적으로 잘 막을 수 있었을까.

③ 미국 유럽등이 전염병 재확산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실업과 빈곤 등 극심한 경제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활동을 재개하는 것이 바람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