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리지 10배' CFD로 몰려가는 왕개미들

차익만 정산하는 장외파생상품
증거금 10%로 10배 주식 매수
전문투자자 등록 문턱 낮추자
반년 새 2배 늘어난 7000명
지난달 CFD 거래 1조 육박
주식시장을 이끌고 있는 ‘개미 군단’에는 여러 부류가 있다. 그중 가장 공격적으로 자금을 굴리는 개미는 장외파생상품인 차액결제거래(CFD·contract for difference)를 활용하는 소위 ‘왕개미’들이다. 이들은 각각 하나의 헤지펀드처럼 움직인다. 라임 펀드가 활용했던 총수익스와프(TRS)와 비슷한 방식으로 원금의 900%까지 빚을 내 주식을 살 수 있다. 공매도도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CFD 투자는 고위험 투자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개인 전문투자자만 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개인 전문투자자 문턱이 대폭 낮아져 ‘왕개미’로 변신한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스캘퍼도 가세…지난달 1兆 규모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전문투자자 수는 반년 사이 두 배로 급증했다. 전문투자자 진입 요건이 완화된 작년 11월 20일 3571명(기관투자가 포함 기준)에서 지난달 말 약 7000명으로 늘었다.새로 등록한 전문투자자는 대부분 CFD 투자에 나서기 위한 개인들로 전해졌다. CFD란 실제로는 투자 상품을 보유하지 않으면서 차후 가격 변동에 따른 차익만 정산하는 장외파생상품이다. 투자자와 증권사가 맺는 일종의 계약이다. 과거 FX마진 거래에서 주로 활용됐다가 주식으로 영역이 넓어졌다.

주식시장에서 왕개미의 움직임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국내 증권사와 연계된 JP모간 CIMB 등과 같은 외국계 증권사가 자체 자금으로 주식을 대신 사주고 차후 정산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같은 우량주는 투자금의 10%만 증거금으로 내면 된다. 삼성전자 1만 주(15일 종가 기준 4억7850만원)를 4785만원으로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주가가 10% 오르면 100% 수익을 보지만 10% 내리면 투자금 전액을 날린다. 증거금률은 투자 종목에 따라 10~40% 수준이다.

그동안 CFD는 강남 ‘큰손’의 전유물이었다. 지난해까지 CFD는 연말 대주주 양도소득세 과세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로 활용됐다. 연말 큰손들은 기존 주식을 팔지 않고 CFD 계좌로 잠시 옮겨놓는 식으로 양도차익 과세를 피해갔다.올 들어선 개인투자자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초단타매매를 하는 스캘퍼들도 CFD 시장으로 넘어오고 있다. 지난달 CFD 거래금액은 1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위원회가 작년 11월부터 전문투자자의 기본 조건인 금융투자상품 최소 잔액 기준(1년 유지)을 5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대폭 낮춘 영향이다. 이를 충족하면서 연소득 1억원 이상(부부 합산 1억5000만원 이상)이거나 순자산 5억원 이상인 투자자면 전문투자자 등록이 가능하다. 고소득 중산층도 전문투자자 등록이 가능해졌다.
‘무늬만 전문투자자’ 우려

금융위는 전문투자자 등록이 가능한 개인을 약 15만 명으로 추산했다. 연말로 갈수록 CFD 시장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공매도 금지 조치가 해제되는 오는 9월 중순 이후엔 CFD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CFD는 개인이 손쉽게 공매도에 나설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차입이 쉬운 삼성전자 같은 주식은 수수료를 거의 내지 않고 공매도할 수 있다.연말에는 양도세 요건이 주식 보유액 10억원 이상에서 3억원 이상으로 대폭 강화될 예정이어서 CFD로 수요가 몰릴 전망이다. 증권사들도 ‘왕개미 모시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16년 CFD 서비스를 시작한 교보증권에 이어 지난해 키움증권 하나금융투자 DB금융투자가 뛰어들었다. 올해는 한국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대형사들도 나서고 있다.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왕개미 상당수가 실제로 CFD의 고위험 레버리지를 감내하기 어려운 ‘무늬만 전문투자자’라는 시각이 많다. 자칫 코로나19 급락장이 재연되면 지난 3월과 마찬가지로 ‘깡통계좌’가 속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소속 변호사는 “애초 금융위는 사모펀드 활성화를 위해 전문투자자 문턱을 낮췄는데 CFD 시장만 커지고 있다”며 “전문투자자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자산이나 소득 규모에 맞춰 CFD 증거금률을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