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1년 만에 퇴장하는 공인인증서, 무슨 교훈 남겼나

공인인증서 제도가 우여곡절 끝에 도입 21년 만에 폐지될 전망이다. 여야가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기존 공인인증서 제도를 폐지하고 공인인증서와 민간의 다양한 전자서명 수단이 차별없이 경쟁하도록 하는 내용의 전자서명법 전부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공인인증서는 신기술 인증서비스에 밀리면서 사용이 점차 축소될 것이란 예상이다.

1999년 도입된 공인인증서는 민원서류 발급 같은 전자정부 서비스, 인터넷 금융 등에 기여한 바도 있었다. 하지만 발급이 번거롭고 관련 플러그인 기술인 액티브X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익스플로러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불편이 많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액티브X 문제 해결을 직접 지시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공인인증서 폐지를 약속했다. 규제개혁 관련 회의가 열릴 때마다 공인인증서가 단골 메뉴로 올라왔던 이유다.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액티브X는 해킹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공인인증서가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다 보니 관련 업계는 보안투자에 나설 동기가 약했다. 인증 경쟁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공인인증서가 퇴장하기까지 21년을 기다려야 했다는 것은 독점적 지위로 형성된 기득권과 고착화된 ‘경로의존성’을 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지금도 공인인증서로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공인인증서 폐지 논란과 함께 시작된 인증 경쟁은 시장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별도 프로그램을 설치할 필요 없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카카오페이 인증’은 3년도 안 돼 이용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통신 3사의 본인 인증 앱 ‘패스(PASS)’도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은행연합회는 뱅크사인으로 사용자를 늘려가고 있다. 이제는 홍채나 지문 인식도 가능한 시대다. 자유로운 인증 경쟁이 새로운 시장과 신산업을 낳고 있다.

공인인증서 제도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정부가 개입할 때와 안 할 때를 제대로 구분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정부가 조급한 마음에 특정 기술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마다 ‘기술 중립성’ 원칙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시장에서 승자가 표준이 돼야지, 정부 개입이 일상화되면 그게 곧 규제이자 민간의 기술개발과 시장 경쟁을 왜곡하는 등 수많은 부작용을 낳게 된다. 차별 없는 경쟁은 혁신 생태계의 전제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