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CEO된 유빈 "수차례 '멘붕'왔지만 배우는 게 즐거워요"

원더걸스 출신 가수 유빈 인터뷰

유빈, JYP 떠나 소속사 설립 후 첫 활동
사회생활 공감 담은 '넵넵' 발표
유빈 "듣기 좋다는 말만 들어도 성공한 것"
"CEO요? 자유 생겼지만 책임감도 느껴지죠"
유빈 인터뷰 /사진=르엔터테인먼트 제공
2007년 그룹 원더걸스로 데뷔해 올해로 연예 활동을 시작한지 어언 14년차. 원더걸스의 래퍼로 2000년대 국내 가요계를 휩쓸었고, 이후 솔로 가수로 대중 앞에 섰던 유빈은 이제 '아티스트·CEO'라 적힌 명함을 건넸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자신을 가수 겸 연예 기획사 대표라 수줍게 소개했다. 아직은 시행착오도 많지만, 이 또한 더 단단해질 자신과 회사를 위한 과정일 것이라며 긍정 에너지가 깃든 미소에서 왠지 모를 강단이 느껴졌다.

유빈은 13년간 몸 담았던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를 떠나 올 2월 직접 르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거취를 옮기고 발표하는 첫 음악. 유빈은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애정도 엄청 간다.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작업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대형 기획사의 울타리 안에서 활동하던 아이돌 그룹 멤버가 연예 기획사를 차린다는 건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어려움도 상당했을 터. 유빈은 "앨범을 만드는 게 정말 어려운 것이더라. 나 혼자 모든 걸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됐다. 그동안 좋은 회사에서 멋진 분들과 일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걸 알았다. 스스로 모든 걸 결정한다는 게 상상했던 것보다 힘들더라. 하나씩 배워나갔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유빈은 왜 연예 기획사 설립을 꿈꿨던 것일까. "거창한 포부는 없었다"고 말한 그는 "잘 아는 사람들끼리 재밌고 소소하게 함께 일을 하고 싶었다. JYP 박진영 PD님을 보면서 '되게 멋있다', '나도 저렇게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런 좋은 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바보가 용기가 있다고 하지 않냐. 아무것도 몰라서 도전을 한 거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멘붕'이 되게 많이 왔다. '이렇게 여러 일들이 있는데 그동안은 내가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거였구나'라고 느꼈다. 하지만 배워가는 과정이 즐거워서 열심히 즐기는 중이다"라며 웃었다.

대표 자리에 올랐으니, 이제는 가수 유빈뿐만 아니라 타 아티스트들의 제작자로서도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이에 대해 유빈은 "앞으로 더 걸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고, 또 작업의 모든 과정을 직접 해보니까 잘 알고 있는 게 좋더라. 스텝을 잘 밟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잘 알아야 앞으로 다른 아티스트들도 서포트할 수 있는 거고, 박진영 PD님처럼 제작을 해도 제대로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차근차근 알아가고 싶다"고 답했다.르 엔터테인먼트 대표로서의 방향성과 목표에 대해 묻자 유빈은 "최대한 다양한 분들이랑 재밌고 즐겁게 일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댄스, 힙합, 발라드 등으로 나누지 않고 여러 장르의 가수들이랑 노래를 하고 싶다. 아이돌 외에 기존 아티스트나 셀프 프로듀싱이 가능한 친구들도 너무 좋다. 배우나 아나운서, 코미디언, 혹은 유튜버, 인플루언서, PD, 작가님들 전부 좋다. 다양한 분야가 함께 해야 시너지가 더 생겨나는 것 같더라. 내가 모르는 분야에서 조언을 듣는 게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다양한 분들이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유빈 인터뷰 /사진=르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번 디지털 싱글 '넵넵(Me TIME)'은 마림바 소스로 시작하는 테마와 훅 부분 피아노 테마들이 인상적인 이지리스닝 힙합곡이다. 이번에는 편안학 즐길 수 있는 힙합이다. 음악적으로도 장르의 한계를 두지 않고, 다양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유빈의 의도가 엿보인다. 앞서 2018년 첫 솔로 앨범에서는 타이틀곡으로 시티팝 장르의 '숙녀'를 선보이며 보컬적인 부분을 부각했다. 이어 두 번째 앨범 '#TUSM'에서는 퓨처 레트로 장르로 섹시함과 걸크러쉬 매력을 한껏 살렸다. 직전에는 빈티지 감성이 충만한 로 파이 힙합 '무성영화'를 선보였다.

유빈은 "'넵넵'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인 것 같다. 그간 걸크러쉬한 모습을 주로 했는데 이번에는 내 안에 있는 재미있고 유쾌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최대한 '넵넵'의 유빈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셨으면 좋겠다. 같이 밥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즐겁다', '스트레스 해소된다', '가볍게 즐기기 좋은 노래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같이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듣기 좋다는 말만 들어도 정말 성공한 거라고 생각한다"며 미소 지었다.'넵넵'은 '네'라고 하기엔 왠지 눈치가 보이는 사람들, 이른바 '넵병'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위로를 담고있다. 유빈은 "마림바 악기를 기본으로 시작해서 통통 튀는 사운드들이 즐거운 음악으로 어디서나 쉽게 즐길 수 있는 곡"이라면서 "사회 생활을 하면서 '넵'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지 않느냐.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다양한데 '현실에서 벗어나서 나만의 자유를 느껴보자'는 내용이다. 퇴근이나 퇴사 혹은 졸업 후 성인이 되었을 때, 방학이 시작돼 해방됐을 때 등의 기분을 함께 공감하고 공유하고 싶었다. 나만의 해방감을 느끼는 곡이라고 이해하고 즐기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JYP를 퇴사하고, 르 엔터의 CEO로서 또 다른 회사 생활을 하는 유빈의 실제 이야기인지 묻자 "최대한 내가 공감할 수 있어야 다른 분들도 공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예전에는 작업을 하면서 일부러 다른 가상의 나를 만들어 해보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실제 나의 순간 순간, 내가 느낀 모든 것들을 같이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가사도 최대한 내 상황대로 써봤고, 노래도 지금의 나를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THX JYP but Free now
참 편했지 뭐
꿀 빨았지 뭐
건강한 유기농 집밥
내 입엔 msg가
real recognize real '넵넵'에는 JYP에 대한 고마움이 담긴 가사도 있다. 유빈은 당시를 회상하며 '꿀 빨았다'고 말하지만 지금의 자신에게는 '자유'가 생겼다고 했다. CEO가 된 유빈의 삶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눴다.
유빈 인터뷰 /사진=르엔터테인먼트 제공
"자유는 느끼지만 거기에서 오는 책임감도 있는 것 같아요."(웃음)

유빈은 "명함 만드는 것처럼 소소한 일들을 즐기고 있다. 영수증 정리하는 것도 처음 해보고, 법인카드도 생겼다"면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있어서 가수로서가 아닌, CEO로서의 새로움과 즐거움도 너무 좋은 것 같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회사 대표가 되었으니 성적 부담감도 더 커지지 않았을까. 유빈의 대답은 "내려놨다"였다. 그는 "성적은 항상 신경이 쓰인다"면서도 "오히려 더 내려놓은 것 같다. 꾸준히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다. 당연히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거고, 기대를 한다고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답했다. 이어 "내가 즐기고, 좋아하는 걸 보여드리면 더 좋아해주시지 않을까 싶다. 꾸준히 열심히 하는 모습을 어필할 예정이다"고 했다.

유빈의 출신 그룹 원더걸스는 아이돌 그룹에 대한 여러 편견을 격파한 팀이었다. 2013년 선예가 현역 걸그룹으로는 최초로 결혼을 했고, 최근 혜림은 태권도 선수 신민철과의 열애를 공개하며 결혼 예정임을 알렸다. 또 선미와 예은(핫펠트)은 현재 원더걸스 활동 때와는 아예 다른 자신들만의 색깔로 솔로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선미는 K팝 대표 퍼포먼스형 여자 솔로 가수로 성장했고, 예은은 털어놓기 어려운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앨범을 발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유빈은 연예 기획사를 설립한 '아이돌 출신 CEO'가 됐다.

이와 관련해 유빈은 "우리가 좋은 시대에 데뷔를 했던 것 같다. 시대가 바뀌는 시점에 데뷔했기 때문에 그런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드릴 수 있었다. 시대가 참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다같이 모여서 '우리 때는 이랬는데'라는 말을 하는 걸 보면서 데뷔한 지가 꽤 됐고, 시대도 많이 달라졌다는 걸 깨닫게 되더라. 어떻게 보면 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유빈이 걷고 있는 길은 또 다른 누군가의 꿈이 될 수도 있다. 유빈은 "만약 나를 롤모델로 생각한 친구가 있다면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렇게 생각해주는 친구를 위해서라도 잘 해야할 것 같다"면서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다. 그게 맞는 것 같다. 고민을 하다가 하기 싫은 걸 하면 꼭 후회를 한다. 근데 반대로 하고 싶은 걸 하면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후회가 없더라. 본인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걸 하면 자신 역시 언젠가 다른 사람의 롤모델이 되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밝혔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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