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兆 회사채·CP 매입기구 내달 가동…투기등급 'BB'까지 사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돕기 위한 10조원 규모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기구가 내달말께 가동한다. 투기등급으로 분류되는 BB등급 회사채도 매입해준다. 10조원 가운데 한국은행이 8조원을 대출한다. 한은이 특수목적기구(SPV)를 통해 직접 대출하는 것은 처음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20일 제4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회사채·CP 매입기구(SPV) 설립 방안을 확정했다. SPV 규모는 10조원으로 정했다. 지난달 22일 SPV 도입을 처음 발표했을 때(20조원)보다는 줄었다. 기재부는 "시작부터 규모가 너무 크면 신속한 집행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기업 수요가 크면 향후 20조원까지 확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입 대상은 우량 등급인 AA등급부터 투기등급인 BB등급까지 포함한다. 시장 예상보다 범위가 넓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시장에선 "정부가 BB등급 바로 위인 BBB등급도 매입 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다만 BB등급은 원래는 BBB등급 이상이었으나 코로나19 영향으로 등급이 하락한 경우로 한정한다. CP·단기사채는 A1~A3 등급을 대상으로 했다.

정부는 또 이자보상비율이 2년 연속 100% 이하인 기업은 매입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매입 금리는 시장 금리에 일부 가산 수수료(최대 100bp 이내)가 붙는다. 동일 기업과 기업군에 대한 매입 한도(SPV 전체 지원액의 2% 및 3% 이내)에도 제한을 둔다. 재원은 △한은 선순위 대출 8조원 △정부 1조원 출자 △산업은행 후순위 대출 1조원 등으로 마련한다. 한은이 80%를 직접 대출하는 셈이다. 한은이 SPV를 통해 직접 대출에 나선 건 한은법 제정 이후 처음이다. 한은의 대출은 SPV가 자금을 요청하면 대출하는 캐피털 콜(Capital call) 방식으로 이뤄진다. 대신 한은 출자금을 우선 상환 대상으로 지정해 중앙은행의 위험 부담을 줄였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 시장 안정에 대한 한은의 강한 의지가 시장에 전달되면 효과도 클 것으로 판단했다"며 "산은을 통한 정부 출자와 산은 후순위 대출로 신용 보강이 충분히 이뤄진 점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SPV 출범 시기는 3차 추가경정예산안 통과 직후다. 정부의 SPV 출자를 3차 추경안에 담아야 하고, 추경안이 확정돼야 가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달초 3차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르면 내달말 SPV가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운영 기간은 6개월이며 향후 시장 상황에 따라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