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세계에 알린 기산 김준근의 120여년 前 풍속도

국립민속박물관 '기산 풍속화에서 민속을 찾다'展

구한말 다양한 풍속 그린 화가
선교사 등 외국인들 많이 구매
독일 소장 70여 점 등 150점 선봬
당대 조선 민속 생생하게 담아
구한말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이 신랑 행렬을 그린 ‘장가가고’(왼쪽)와 단옷날 그네 타는 모습을 담은 ‘추천하는 모양’(가운데), 농부들이 밭에서 씨 뿌리는 풍경을 묘사한 ‘밭 갈고 부종하는 모양’(오른쪽).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기산(箕山) 김준근은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처럼 유명하진 않지만 생업과 의식주, 의례, 세시풍속, 놀이 등 전 분야의 풍속을 그린 인기 화가였다. 부산의 초량을 비롯해 원산, 인천 등 개항장에서 활동했고, 국내 최초로 번역된 서양 문학작품인 ‘천로역정(天路歷程)’의 삽화를 번역했다. 구한말 이후 방한한 여행가, 외교관, 선교사 등 외국인에게 많이 팔린 그의 그림은 현재 독일 프랑스 등 유럽과 북미 박물관에 주로 소장돼 있다. K컬처를 세계에 알린 선구자인 셈이다.

미술사, 민속학 등의 연구자에게는 관심 대상이었지만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김준근의 존재와 그의 풍속화에 담긴 우리 민속의 흔적과 변화상을 살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립민속박물관이 20일 개막해 오는 10월 5일까지 여는 ‘기산 풍속화에서 민속을 찾다’ 특별전이다. ‘밭 갈고 부종(付種·씨뿌리기)하는 모양’ ‘여인 방적(紡績·실뽑기)하고’ ‘행상(行喪)하고’ ‘추천(韆·그네타기)하는 모양’을 비롯한 기산의 풍속화와 ‘두부판’ ‘씨아’ ‘시치미’ ‘대곤장’ 같은 민속자료 등 340여 점이 소개된다.1부 ‘풍속이 속살대다’에서는 국립민속박물관과 독일 MARKK(옛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150여 점의 풍속화와 나무기러기, 종경도, 거북점구 등의 민속품이 생활공간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펼쳐진다.

전시품은 대부분 국내에 최초 공개되는 것이다. 사람과 물산이 모이는 시장과 주막, 소리꾼과 굿중패, 솟대장이패의 갖가지 연희와 갓, 망건, 탕건, 바디, 짚신, 붓, 먹, 옹기, 가마솥 등을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글을 가르치는 모습, 과거 시험, 오늘날의 신고식에 해당하는 신은(新恩)과 신래(新來), 혼례와 상장례, 널뛰기와 그네뛰기, 줄다리기, 제기차기 같은 세시풍속 등 옛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생생하다. 특히 그네뛰기, 베짜기처럼 주제는 비슷한데 서로 다른 인물과 구도의 풍속화들도 있어 주목된다. 예물 보내는 모습부터 친영 행렬, 초례, 신부 행렬에 이르기까지 혼례의 전 과정을 담은 그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도 한다.

2부 ‘풍속을 증언하다’는 기산 풍속화와 거기에 등장하는 기물(器物)들을 통해 민속의 변화상을 살펴보는 자리다. 갈이장이와 대장장이 같은 수공업, 맷돌·두부·물긷기와 같은 식생활, 바둑·장기·쌍륙 등의 놀이, 삼현육각·탈놀이와 같은 연희, 혼례를 비롯한 일생의 의례, 모자·다듬이질 같은 의생활, 시험과 합격 같은 사회생활 등 총 7개 주제에 따라 기산의 풍속화와 사진엽서, 민속자료, 영상을 통해 지속하거나 변화하는 민속의 실상을 보여준다.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이 126년 만에 돌아온 독일 MARKK 소장 기산 풍속화 79점(복제본 8점 포함)이다. 외교관이자 인천에 세창양행을 설립한 에두아르트 마이어(1841~1926)가 수집한 61점의 전체 실물이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대부분 인물과 배경을 함께 담고 있어 예술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는 설명이다. 1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채색이 그대로 살아 있어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