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한국이 '기후악당'이라니…동의 힘들다"

'그린 뉴딜' 포함 결정적 계기된
12일 국무회의서 어떤말 오갔나

김상조 "재원 문제…신중해야"
김현미 "에너지 효율·고용 늘어"
조명래 "기후악당 지적 고민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선 ‘그린 뉴딜’에 대한 논의가 폭넓게 이뤄졌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그린 뉴딜을 ‘한국판 뉴딜’ 사업에 포함하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환경부 등 관련 부처 장관들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간 난상토론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실장은 반대 의견을 냈지만 성윤모 산업부 장관, 김현미 국토부 장관, 조명래 환경부 장관 등은 찬성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실장과 각 부처 장관이 각자의 소신에 따라 의견을 개진한 것은 지난 1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였다. 이날 토론 주제는 그린 뉴딜을 한국판 뉴딜에 포함해 추진하느냐 여부였다. 문 대통령은 참석 국무위원들에게 눈치보지 말고 의견을 내줄 것을 당부했다. 성윤모 장관은 그린 뉴딜이 관련 사업을 촉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조명래 장관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된다며 한국판 뉴딜에 포함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하지만 김 실장은 여러 측면을 좀 더 고려한 다음 신중히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견해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의 방향으로 이미 △비대면 산업 육성 △디지털 인프라 △사회간접자본(SOC)의 디지털화 등 세 가지를 제시했는데 그린 뉴딜까지 포함하면 복잡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김 실장은 또 그린 뉴딜을 추가하면 예산을 추가로 배정해야 한다며 재원 문제도 제기했다는 후문이다.

김 실장의 얘기가 길어지자 이번엔 김현미 장관이 서울의 그린 리모델링을 예로 들며 찬성 논리를 폈다고 한다. 주택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는 등 그린 리모델링을 접목한 결과 에너지 효율성이 높아지고 관련 고용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이날 토론에 대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고 전했다.

또 조명래 장관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기후악당’이란 말을 듣는 것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의 기후변화 연구기관인 ‘기후행동추적’은 ‘세계 4대 기후 악당국가’로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한국을 선정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조 장관이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을 염두에 둔 것 같다고 전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지난 3월 문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국의 석탄금융 중단을 촉구하며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사업에 대한 투자는 P4G(녹색성장 및 2030 글로벌 목표를 위한 연대)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한국의 위상과 상충할 것”이라고 했다.석탄금융이란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할 때 대출과 보증을 제공하는 등 금융지원을 해주는 것을 말한다. 정부는 한국전력 등이 2000년대 이후 동남아시아 등 외국의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사업을 수주하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금융지원을 해오고 있다. 2018년 한전이 인도네시아에서 수주한 석탄화력발전소 ‘자와 9·10호기’에 대해서도 정책금융기관들이 대출과 보증을 내주기로 했다. 이에 인도네시아 주민들이 지난해 한국 법원에 금융지원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고 한국을 찾아 시위를 벌이는 등 국제 이슈가 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를 정리하면서 한국을 ‘기후악당’이라고 칭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다고 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한국도 과거 개발도상국가였으며 당시 기술과 비용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석탄화력발전소에 의존한 것 아니냐는 의견을 덧붙였다는 후문이다.

구은서/김형호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