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후쿠오카 "조선 징용공은 가혹한 곳" 방송 삭제 요청해 물의

일본 후쿠오카현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인 광부가 먼저 안전한 장소를 고르면 조선인 등 징용공(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는 가혹한 현장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지역 방송의 내용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해 물의를 빚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후쿠오카현이 규슈아사히방송(KBC)에 위탁해 제작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인 '나카니시 가스히사 인간일기'를 아카이브화(디지털 자료화) 할 때 일부 내용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21일 보도했다.
나카니시 가스히사 인간일기는 후쿠오카현이 인권 신장을 위해 KBC에 위탁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방송사가 인권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면 배우 나카니시(사진)가 코멘트를 덧붙이는 형식이다. 매년 3월 후쿠오카현과 KBC, 나카니시가 주제와 인터뷰 대상을 사전 협의한다. 계약서 상 후쿠오카현이 방송 내용의 편집에 관여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후쿠오카현이 문제 삼은 부분은 2차대전 당시 후쿠오카현 미즈마키초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했던 네덜란드인 포로와 지역민의 교류를 다룬 작년 8월 방송. 방송 중간 기록작가인 하야시 에다이의 저서가 인용됐다. 지쿠호(현재 후쿠오카현의 북서부) 지역에 조선인, 중국인 그리고 전쟁포로 등이 강제로 끌려와 거대한 탄광에서 노역을 했다는 내용이다.나카니시는 "일본인 광부가 먼저 안전한 장소를 고르고, 강제노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가혹한 현장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대목을 발췌해 코멘트했다.

후쿠오카현이 삭제를 요청한 시점은 지난 1월. 방송 다음날 "징용공 문제가 정치적 이슈로 부상했는데 세금으로 정부와 반대되는 견해의 방송을 지원하는가"라는 항의 편지가 왔다는 이유에서였다. 해당 방송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닌데도 후쿠오카현은 전쟁 당시 탄광의 강제노동이 부각돼 항의가 빗발칠 것을 우려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나카니시와 KBC의 거부로 후쿠오카현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방송 내용은 그대로 아카이프화됐다. 나카니시는 "항의 편지 1통으로 수정을 요구하는 현의 인식을 이해할수 없다"며 "표현의 자유는 인권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후쿠오카현은 "해당 방송은 후쿠오카를 홍보하려는 프로그램이지 나카니시의 의견 표명의 장이 아니다"라며 "다만 KBC의 지적도 있어 있는 그대로 등록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