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류 역사 관통하는 창의성…진화생물학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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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와 창의성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어떻게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됐을까. ‘진화적 혁신’이란 주제를 연구해온 안드레아스 바그너 스위스 취리히대 진화생물학 교수는 그 해답을 과학 분야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적응 지형도’에서 찾는다. 유전학자 시월 라이트가 제안한 적응 지형도는 생명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가능한 형태와 그 형태들이 관련된 모든 개연성을 그린 일종의 지도를 의미한다. 바그너 교수는 저서 《진화와 창의성》에서 진화가 모든 가능성을 찾아내는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 적응 지형도를 어떻게 읽고 활용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그런 다음 진화가 이 광대한 지형도 안을 탐험하도록 돕는 과정이 창의성의 밑바탕이 되는 과정과 닮아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안드레아스 바그너 지음 / 우진하 옮김 / 문학사상
424쪽│1만7500원
저자에 따르면 지구상에 탄생한 생명체의 단일 세포는 시간이 흐르면서 수십억 개의 구성 요소를 지닌 특별한 조직체로 탈바꿈하게 됐다. 이런 다세포 유기체는 냄새와 소리, 빛을 이용해 세상을 탐구할 수 있는 감각들을 진화시켰다. 그러다 마침내 신경계통이 복잡한 두뇌 조직으로 진화했고, 추상적인 상징들을 창조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런 진화 과정 덕분에 인간은 프랑스 라스코동굴의 벽화와 모네의 풍경화를 그릴 수 있었고, 수메르의 계산용 점토판과 복잡한 슈퍼컴퓨터까지 만들어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도, 피타고라스의 정리도, 슈뢰딩거의 방정식도 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저자는 “인간이 이룬 모든 문명은 자연의 창의성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며 “인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과 자연 속 생물들이 생존을 위해 진화하는 과정이 무척 닮았다”고 설명한다. 그는 자연이나 인간이나 창의성을 발휘해 가능성과 개연성을 찾아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지형적 사고의 관점’이라고 부른다. 지형적 사고는 ‘광대하고 복잡한 지형을 탐험할 수 있는 능력이며 일종의 심오한 원칙’이다.
저자는 “지형적 사고는 우리로 하여금 더 잘 생각할 수 있도록, 자녀들을 더 잘 키울 수 있도록, 그리고 올바른 학교 교육과 경영 정책, 정부 규제 등과 함께 혁신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인간과 사회의 수많은 일에서 다양성이 맡고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책 후반부에선 획일적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음악과 미술, 놀이 등 창의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저자는 “그저 평준화된 시험을 목표로만 가르치는 것은 학생들에게 상처만 남긴다”며 “진정한 적자생존은 교실 안에서 창의적 사고를 어떻게 키워주는가에 달려 있다”고 단언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