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글판 30년…최고 인기 문구는?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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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 있는 ‘광화문 글판’의 주인공이 될 기회가 전 국민에게 주어졌다. 교보생명이 마련한 ‘광화문 글판 30년 기념 문안 공모전’에 응모해 대상을 받으면 상금 100만원과 함께 수상작이 올 9월 ‘30년 기념 광화문 글판’에 실리는 영예를 누릴 수 있다. 교보생명 홈페이지와 공식블로그 이벤트 페이지를 통해 오는 31일까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하루 100만여 명이 지나는 서울 한복판의 광화문 글판은 계절마다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교보생명 본사 외벽에 내걸린 가로 20m, 세로 8m의 대형 글판을 3~4행의 멋진 문구로 장식한다. 글판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은 교보생명 창업자인 고(故) 신용호 회장이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경영철학을 가진 그는 금싸라기 땅인 교보생명 지하에 ‘돈 안 되는’ 교보문고를 연 주인공이다. 시민들에게 꽃향기를 선물하려고 건물 앞에 라일락을 심기도 했다. 그 덕분에 교보문고는 ‘사람을 만드는 집’으로 사랑 받을 수 있었다.
1991년 출발한 광화문 글판은 그때부터 줄곧 희망을 노래했다. 첫 문구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 활력 다시 찾자’도 가난을 이기자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이는 ‘개미처럼 모아라/ 여름은 길지 않다’ ‘봄에 밭을 갈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다’ 등으로 이어졌다.
글판에 시심이 본격적으로 녹아들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다. 창업자의 아들인 신창재 현 교보생명 회장이 산부인과 의사를 그만두고 경영에 뛰어들면서 감성적인 시를 활용해 위안과 용기를 동시에 주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가장 인기를 끈 문구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다. 시가 짧아 전문을 다 새겼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시는 시인이 숲속 작은 마을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근무할 때 풀밭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준 말을 옮겨 쓴 것이다. 두 번째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 나오는 구절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는 시구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업에 실패한 한 가장은 시내버스 뒷좌석에서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라는 구절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다잡았고 마침내 재기할 용기를 냈다고 한다.
장석주 시인은 “저 짧은 시구들이 실패하고 낙망한 마음들을 두루 품고, 시름과 걱정은 어루만져 덜어주고, 아물지 않는 상처와 영혼의 흠결들을 덮어주겠다 싶었다. 때로는 불 꺼진 재처럼 시린 가슴마다 기쁨과 열정의 불을 지펴 주기도 하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천양희 시인의 ‘너에게 쓴다’에서 따온 구절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가 2020년 봄 편 문구로 새겨져 있다.
광화문 글판은 사람이 아닌데도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11년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발간하는 계간지 《코리아나》 여름호를 통해 전 세계 160개국에 ‘서울을 상징하는 문화아이콘’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올 가을 광화문 글판의 옷은 어떤 글귀로 바뀔까. 30주년을 맞아 ‘시민과 함께 만드는 글판’으로 변신하는 이곳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그의 신선한 글맛으로 광화문광장 전체가 환해질 듯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하루 100만여 명이 지나는 서울 한복판의 광화문 글판은 계절마다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교보생명 본사 외벽에 내걸린 가로 20m, 세로 8m의 대형 글판을 3~4행의 멋진 문구로 장식한다. 글판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은 교보생명 창업자인 고(故) 신용호 회장이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경영철학을 가진 그는 금싸라기 땅인 교보생명 지하에 ‘돈 안 되는’ 교보문고를 연 주인공이다. 시민들에게 꽃향기를 선물하려고 건물 앞에 라일락을 심기도 했다. 그 덕분에 교보문고는 ‘사람을 만드는 집’으로 사랑 받을 수 있었다.
1991년 출발한 광화문 글판은 그때부터 줄곧 희망을 노래했다. 첫 문구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 활력 다시 찾자’도 가난을 이기자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이는 ‘개미처럼 모아라/ 여름은 길지 않다’ ‘봄에 밭을 갈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다’ 등으로 이어졌다.
글판에 시심이 본격적으로 녹아들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다. 창업자의 아들인 신창재 현 교보생명 회장이 산부인과 의사를 그만두고 경영에 뛰어들면서 감성적인 시를 활용해 위안과 용기를 동시에 주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가장 인기를 끈 문구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다. 시가 짧아 전문을 다 새겼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시는 시인이 숲속 작은 마을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근무할 때 풀밭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준 말을 옮겨 쓴 것이다. 두 번째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 나오는 구절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는 시구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업에 실패한 한 가장은 시내버스 뒷좌석에서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라는 구절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다잡았고 마침내 재기할 용기를 냈다고 한다.
장석주 시인은 “저 짧은 시구들이 실패하고 낙망한 마음들을 두루 품고, 시름과 걱정은 어루만져 덜어주고, 아물지 않는 상처와 영혼의 흠결들을 덮어주겠다 싶었다. 때로는 불 꺼진 재처럼 시린 가슴마다 기쁨과 열정의 불을 지펴 주기도 하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천양희 시인의 ‘너에게 쓴다’에서 따온 구절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가 2020년 봄 편 문구로 새겨져 있다.
광화문 글판은 사람이 아닌데도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11년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발간하는 계간지 《코리아나》 여름호를 통해 전 세계 160개국에 ‘서울을 상징하는 문화아이콘’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올 가을 광화문 글판의 옷은 어떤 글귀로 바뀔까. 30주년을 맞아 ‘시민과 함께 만드는 글판’으로 변신하는 이곳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그의 신선한 글맛으로 광화문광장 전체가 환해질 듯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