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된 제막식…헌 이불 덮어 검은 고무줄 동여맨 평화의 소녀상

한쪽 발에는 작업용 면장갑…한 시민 "섬뜩하기까지 하다"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시민의 뜻으로 제작한 평화의 소녀상인데 이렇게 취급하다니…"
정미경 태백시의회 의원은 22일 강원 태백문화예술회관 시계탑 앞에 보관 중인 태백 평화의 소녀상 사진을 보고 이같이 말했다. 태백 평화의 소녀상은 애초 삼일절인 지난 3월 1일 제막식을 할 예정이었다.

제막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이달 23일로 연기된 데 이어 최근 다시 연기됐다.

제막식이 잇따라 연기됐지만 제작이 끝난 태백 평화의 소녀상은 설치 장소인 태백문화예술회관 시계탑 앞에 이미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헌 이불로 덮은 후 검은 고무줄로 동여맨 태백 평화의 소녀상을 본 시민들 사이에서는 '섬뜩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 21일 현장을 확인한 결과 헌 이불 아래 드러난 소녀상의 한쪽 발에는 양말도 아닌 작업용 면장갑이 신겨져 있었다. 접근을 막고자 주차금지 시설물에 매어놓은 접근금지를 알리는 줄은 끊어진 채 방치된 상태였고, 공사 자재를 담았던 것으로 보이는 용기도 소녀상 옆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태백 평화의 소녀상 건립 사업은 태백 평화의 소녀상 기념사업회가 추진 중이다.

기념사업회는 여성단체·새마을회·어린이집 연합회, 청소년육성회, 가정폭력상담소, 학부모회, 공무원 노조, 한국장애인부모회,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시민연대, 중·고등학교 학생 대표 등 태백지역 14개 시민사회단체로 지난해 9월 발족했다. 당시 기념사업회는 발족 선언문에서 "광산으로 태생한 도시 태백은 일제 강점기 강제 수탈과 징용의 아픔을 겪었다"며 "그 아픔을 기억하는 것,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아픔의 치유를 평화의 소녀상 건립으로 시작하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태백 평화 소녀의 상 건립 사업비는 태백시 지방보조금 5천500만원과 자체 부담(기부금 및 성금) 1천만원 등 총 6천500만원이다.

강원지역 한 시민사회단체 대표는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해 세우는 것인데 이렇게 흉물처럼 방치하는 것은 안 된다"며 "할머니들이 보신다면 얼마나 속상할까요"라고 반문했다. 지난 21일 현장을 확인한 태백시 관계자는 "시민들의 항의를 받을 만하다"며 "기념사업회에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천막 설치 등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