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단군 이래 최고가 찍은 한우

코로나發 정육 가격 급등

1㎏ 2만906원…통계 작성후 최고
재난지원금으로 한우 소비 증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 급감 등 영향

돼지고기값도 덩달아 고공행진
한우 가격이 치솟고 있다. 지난 21일 도매 가격이 ㎏당 2만906원까지 올라 1995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서울 마장동 마장축산물시장에서 방문객들이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한우 도매가격이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22일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21일 한우 지육(뼈를 뺀 소고기) 도매가는 ㎏당 2만906원을 기록했다. 1995년 물가 통계용 조사를 시작한 뒤 가장 높은 가격이다. 축산업계 관계자는 “소고기 가격이 최고가 기록을 계속 경신하고 있다”며 “‘단군 이래 가장 비싼 한우’라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한우는 선물 수요가 많은 설 추석 등 명절에 가격이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5월은 육류 소비 비수기로 꼽힌다. 올해 들어 이런 공식이 깨지고 있다. 지난해 ㎏당 1만7000~1만8000원대를 유지하던 한우 도매가는 올 들어 1만9000~2만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공급 감소다. 올 1분기 도축된 한우는 18만8174마리로 전년 동기 대비 4000마리 이상 감소했다. 농가들이 개편된 한우 등급제에 따라 등급을 높게 받기 위해 소 도축 시기를 늦추고 있다. 도축 시기를 늦추며 고기에 마블링을 더 넣는 등의 작업을 한다는 분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인한 외부 요인도 있다. 국내 수입 소고기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산 소고기에 수급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2주 전부터 국내 도매 시장이 출렁였다. 미국 내 소고기 도매가는 공급 감소로 최근 5개월 새 2.5배 상승했다.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급한 재난지원금이 한우 소비를 부추겼다. ‘공돈’이 생기자 평소 비싼 식재료로 꼽히는 한우를 맛보려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고교 3학년부터 등교개학이 시작되며 급식 수요가 되살아난 것도 한우값을 끌어올렸다.

돼지고기 가격도 오름세다. 21일 돼지고기 도매가는 ㎏당 5257원으로 올 들어 가장 비쌌다. 1월 3200원대를 유지하던 것과 비교하면 5개월 새 64% 상승했다. 중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처음 유행하면서 국내 돼지고기 가격이 반짝 상승했던 2018년 7월 가격(6016원)에 육박하고 있다.
재난지원금 풀리자 "이 참에 소고기"…미국산 줄어 '금값 된 한우'
갑작스런 소득에 한우 수요 급증…가격 평년보다 15%↑

한우 가격이 연일 고공행진이다. 국내 도축 물량이 줄어든 데다 미국산 수입 물량이 급감했다. 긴급재난지원금(코로나지원금) 소비, 개학 이후 급식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 등 여러 요인이 겹쳤다. 전문가들은 “1년 중 정육 수요가 가장 많은 9월 말 추석연휴가 지나면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 한 마리 경매가격 1000만원

22일 축산물품질평가원이 밝힌 전날 한우 지육(뼈를 뺀 소고기) 도매가는 1㎏에 2만906원. 관측 이래 역대 최고가다. 최근 1주일간 시세도 평년 대비 15% 이상 높게 형성돼 있다. 이날 소매가도 등심 기준으로 1㎏에 9만4186원이었다. 올해 최고가였던 2월 4일 가격(9만5906원)에 근접했다.

공급 감소가 가격 상승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가 지난해 말 한우 등급제의 평가 기준을 완화한 것도 한우 시세를 끌어올린 원인이다. ‘1++’등급 평가 기준을 완화하자 최고 등급 소고기는 늘고, 가격이 낮은 1+등급과 1등급은 줄었다. 시장에서 1++등급은 ㎏당 1100원, 1+등급은 1048원가량 더 비싸다. 2~3등급 한우도 ㎏당 200~500원가량 올랐다. 한우 농가도 모처럼 웃고 있다. 지난해 중순까지 800만~900만원이던 소 한 마리 가격은 올 들어 1000만원대에 진입했다. 경북의 한우 경매시장 관계자는 “지난해 소 한 마리를 팔면 900만원을 받았는데 올해는 1000만원 넘는 낙찰가가 계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폭발하는 수요, 못 받쳐준 공급

등급제와 도축 마리 수 감소로 올초부터 구조적 가격 상승 요인을 안고 있던 한우 시장은 수입 소고기가 줄며 ‘반사이익’도 얻었다.

미국산 소고기는 국내 수입 소고기 시장의 53%. 미국 내 육류 가공업체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대거 문을 닫는 ‘셧다운’이 계속되자 소고기 수입업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4월 2만600여t이던 미국산 소고기 수입량은 올 4월 1만9000여t으로 1600t가량 감소했다. 한 수입 소고기 도매상인은 “미국산 목심 1㎏이 최근 한 달 새 9000원에서 1만4000원대로 올랐다”며 “미국 현지에서 다음달 수출용 정육 공급 가격을 평소보다 30% 높여 제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업계는 미국 대형마트가 여전히 1인당 소고기 구매를 3팩으로 제한하는 등 미국 내 소고기 ‘품귀 현상’으로 인해 하반기에도 수입이 정상화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생각지 못한 수입은 고기, 특히 한우 수요를 폭발시켰다. 편의점 GS25에 따르면 지난 13일부터 21일까지 국산 정육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17% 증가했다. 전주(4~12일)와 비교해도 80.5% 많다. 서영석 전국한우협회 국장은 “외식 소비가 줄었지만 가정에서의 한우 소비가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 수준”이라며 “갑자기 소득(재난지원금)이 생긴 데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소고기 수입도 원활하지 않아 한우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고3부터 순차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등교개학도 변수다. 학교가 문을 닫는 동안 남아돌았던 급식용 식자재 소비가 다시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도매 가격에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지원금 소진되면 가격 안정될 듯”

축산업계는 올해 한우 등 고기 가격이 ‘M자 곡선’을 그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달 지급된 재난지원금 사용 시한이 다가오는 7월부터 가격이 잠시 안정됐다가 연중 정육 수요가 가장 많이 몰리는 9월 추석에 잠시 오르고, 이후 완만한 안정세를 그릴 것이라는 얘기다. 축산 육가공·유통업체 돈마루의 안형철 영업팀장은 “사태, 앞다리, 양지 등 국거리에 사용되는 정육보다 등심과 안심 등 구이용에 쓰는 부위육이 집중적으로 팔린다”며 “충동적 소비가 커진 만큼 하반기 가격이 안정될 것”으로 내다봤다.미국산 소고기 공급이 다시 원활해져 예상보다 가격 안정이 더 빨리 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미국 육류수출협회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로 인해 중단했던 각종 규제 완화 정책을 재추진할 것을 행정명령하면서 모든 도축장이 정상 가동을 시작했다”며 “곧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