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혼란의 시대, 장보고와 청해진 경제특구를 보다

(33) 장보고의 해양무역국가와 청해진 경제특구

장보고, 신라의 해양력 강화
범신라인 네트워크 활성화 이끌어
쌍방무역 넘어 보세가공무역, 문화상품까지
청해진 성벽 풍경. 사진=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국제관계의 혼란스러운 재편 속 한국은 어떻게 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문제는 사람과 정책이다. 우리가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역사와 조상이 간 ‘길(道)’을 바라보면서 미래의 길을 찾아야 한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지금, 과거 동아시아 세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신라의 장군이자 무역상인 장보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보고는 누구인가9세기에 들어와 동아시아에는 평화의 시대, 경제의 시대, 무역의 시대가 도래했다. 아라비아까지 이어지는 해양 실크로드, 동로마까지 연결된 사막 실크로드와 초원 로드는 동아지중해 무역망과 긴밀해지는 중이었다. 장보고는 이 같은 국제정세 변화 속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찾아내 적응하는 데 성공했다. 천성과 특수한 경험을 바탕으로 거시적인 안목과 경륜을 갖춰 국제질서 변화와 신라의 내부상황을 간파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장보고는 790년경 섬(海島)에서 태어나 841년에 암살당한 인물이다. 《삼국사기》에 등장한 장보고는 짧고 냉소적으로 기술돼 있다. "장보고와 정년은 신라 사람이다. 그들의 고향과 조상(父祖)은 알 수 없다."는 내용과 함께 "청해진의 궁복은 왕이 자기 딸을 왕비로 받아주지 않자 원망하면서 청해진에 머물면서 모반했다."고 기록이 남아 있다.
장보고를 신으로 모신 일본 교토의 세키산젠인. 사진=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그런데 《신당서》와 그 시대 최고의 문장가인 두목이 묘사한 장보고는 전혀 다르다. 장보고와 정년은 싸움을 잘 했고, 특히 장보고가 용맹했다고 기록돼 있다. 일본에서는 ‘장보고(張保皐)’를 보배롭고 고귀하다는 의미의 ‘장보고(張寶高)’라고 남기기도 했다. 천태종의 좌주였던 엔닌(圓仁)은 장보고에 편지를 보내 흠모하고 우러른다고 각별하게 칭송했다. 장보고는 현재까지 일본 교토부의 적산선원에서 ‘적산대명신’으로, 히에이산의 원성사에서 ‘신라명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초대 주일 미국대사였던 에드윈 오 라이샤워 교수는 박사논문에서 장보고를 ‘해양식민지를 다스리는 총독, 해양상업 제국의 무역왕(The Trade Prince of the Maritime Commercial Empire.)’이라고 평가했다. 이른바 청해진 체제를 상업제국으로 인식한 것이다. 장보고는 현 상황에 적합한 발전모델과 이론 등을 구축하고 실현시키는 정책과 전략들을 제시할 수 있을까. (윤명철, 《장보고, 그에게 길을 묻다》)해적퇴치를 명분으로 역사에 등장

장보고는 해적을 퇴치한다는 ‘인간주의’를 명분으로 내걸고 역사에 등장했다. 많은 신라인들이 해적들에게 붙잡혀 당나라에 노예로 팔렸고, 이 사안이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당나라는 823년 정월에 노비를 신라로 송환하라는 명을 내리고,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 828년에는 10월에 '신라노비 매매금지령‘까지 발령했다. 한편 일본 해안에는 신라 해적들이 자주 출몰하면서 국가 공물선까지 약탈했다. 동아지중해의 무역망은 균열이 생겼고, 대상인들은 물론 국가도 재정에 타격을 입었으며, 신라정부는 반국가 세력들의 발호라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국가들과 대상인들은, 무장력을 갖춘 해상 관리자가 해적들을 퇴치해 바다를 평정하고, 무역로를 보호해 주길 원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장보고가 등장하며 범신라인 네트워크에 힘을 실어주게 됐다.

해양력 강화와 범신라인 네트워크 활성화의 주역
장보고는 ‘해양력(sea-power)’을 강화시켜 해양 메커니즘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했다. 정치적으로 성장하려는 그는 고향인 완도를 ‘청해진’으로 선택했다. ‘청해(淸海)’, 즉 바다를 청소한다는 의미는 해적들을 소탕하고, 항로를 안정시킨다는 신라의 정책과 함께 신항로를 개척하려는 그의 야망과 의지가 반영됐을 것이다. 그는 중앙정부의 협조와 비호 아래 독특한 관직인 대사가 되어 1만명의 군대와 다수의 선박으로 구성된 해양력을 보유했다. 주변의 섬들을 연결하고, 군항들을 구축해 청해진을 선단을 보호하고, 해적을 공격하는 해양요새로 만들었다. 더욱이 청해진은 중앙정부에서 멀리 떨어져 ‘해도(海島)’ 출신인 그가 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하는데 적합했다.

황해와 동중국해, 남해를 연결하는 항로는 3개의 주선과 간선들이 입체적으로 연결됐다. 장보고는 각각의 항로에 익숙한 본국신라인들, 재당신라인들, 재일신라인들을 ‘범(汎)신라인’으로 네트워크화해 항로를 일원화시켰다. 또한 탁월한 위치와 해양환경을 갖추고, 국제무역과 국내산업을 연결하는 수륙교통의 요지인 청해진을 국제교통의 ‘인터체인지(IC)’로 만들었다.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신라와 당나라, 일본, 아라비아 상인들은 물론이고, 승려들과 사신들도 장보고 선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윤명철, 《장보고 시대의 해양활동과 동아지중해》)쌍방무역을 넘어 삼각 중계무역, 보세가공무역, 문화상품까지

장보고는 무역시스템을 변화시켰고, 상업의 내용과 상품을 다양화하는데 일조했다. 당나라에 ‘대당매물사’라는 수입상인들과 교관선(무역선)을 파견해 당나라, 동남아시아, 아라비아의 고가품들을 수입했고, 신라의 산업제품들을 수출했다. 일본에는 수입상인(廻易使)을 파견하고, 직접 후꾸오까(福岡)시를 방문해서 사무역은 물론 공무역까지 시도했다. 《속일본후기》에는 '번외의 신라국 신하인 장보고(張寶高)가 사신을 보내어 방물을 올렸다'라고 대재부가 중앙정부에 글을 올렸다. 그는 기존의 쌍방무역을 넘어 삼각 중계무역을 활발하게 주도했고, 주변의 배후도시들과 연결해 청자 등의 보세가공 무역도 시도했다. 또한 먹·종이·경전·서적·도자기 등의 문화상품들과 춤·음악·서예 등의 문화콘텐츠를 수입하고, 중계무역도 했다.

장보고는 해양무역과 청해진 체제에 신앙과 종교를 도입했다. 이슬람 상인들은 이슬람교와 상업을 연결시켰고, 유럽의 제국들은 식민지를 경영하면서 기독교를 활용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신라배가 출항하는 산둥반도의 적산포(석도항) 등 신라방에 법화원 같은 종교시설을 마련해 흩어진 교민들을 신앙조직으로 묶었고, 극한상황에서 일하는 항해인들의 정신적 유대관계를 결속시켰다. 또한 불교를 매개로 상업 확장을 꾀했고, 신라에서 선(禪)불교가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일본 불교가 질적으로 성장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조영록, 《동아시아 불교교류사연구》).

왕위 쟁탈전에 휘말린 결말…실패와 종언

장보고는 짧은 시간에 확실히 놀랄만한 성공을 거두웠다. 하지만 국제질서의 또 다른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고, 정치권력의 복잡함과 국제무역의 비도덕성, 자신의 권력의지를 간과했다. 왕위 쟁탈전에 휘말린 그는 군대를 동원해 왕성을 공격해 민애왕을 죽이고 신무왕을 옹립해 쿠데타의 주역이 됐다. ‘감의군사’라는 벼슬과 식읍 2000호를 받았지만, 본인의 딸을 문성왕의 후비로 들이려는 시도에 반발한 귀족들에게 암살당했다. 그의 죽음에는 대해적들과 장보고에 상권을 빼앗긴 당나라와 일본의 대상인 등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청해진은 10년 후에 해체되고,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신라는 붕괴의 길로 들어섰다. 무역질서는 다시 혼란스러워졌고, 일본열도에는 신라해적들의 침입이 빈번해졌다.

21세기에 바라본 장보고와 청해진 체제
장보고호. 사진=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장보고와 청해진 체제는 동아시아 세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무장력과 해양력을 바탕으로 동아지중해의 운송업, 삼각중계무역, 보세가공업, 문화교류, 이데올로기의 전달 등을 해양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유기적으로 운영했다. 또한 좁은 땅을 극복하고, 바다를 매개로 NET(자연스러운 영토·Natural Economic Territory)를 확대하면서 군·산·상 복합체 (김성훈, 《장보고》)에 신앙까지 관여시켰다. 청해진은 당나라의 예로 보아 일종의 자치권과 상업활동, 세금 혜택 등이 보장된 느슨한 경제특구에 해당할 수 있다. 장보고는 천민도 왕족이 될 수 있다는 사회 개혁의식을 확산시켰다. 그의 사후 백성들이 주체가 된 후삼국 시대가 도래했고, 경기만의 해양세력인 왕건은 통일을 이룩했다. 경제무역의 시대, 해양의 시대, 문화의 시대, 네트워크의 시대, 인권의 시대인 지금 우리는 장보고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윤명철 <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