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 사과 없이 10년…점점 무력화되는 5·24조치

통일부 "5·24 조치는 남북한 간 교류 협력을 추진에 더 이상 장애 되지 않아”
정치적 부담 고려해 공식 해제는 안 할듯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책임을 묻기 위해 시작된 한국의 독자적 대북제재인 5·24조치가 24일 10주년을 맞았다.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사실인정이나 사과는 없었지만 5·24조치는 그간 남북 교류라는 명목으로 여러 차례 예외 허용과 기준 완화를 통해 유명무실해졌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는 만큼 5·24조치의 무력화는 향후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20일 통일부는 정례브리핑에서 “5·24 조치는 지난 시기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유연화와 예외조치를 거쳤고, 사실상 그 실효성이 상당 부분 상실했다”며 “정부는 5·24 조치가 남북한 간 교류 협력을 추진하는 데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통일부가 사실상의 무력화를 선언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간 정부는 북한이 천안함 폭침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 5·24조치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왔다. 2018년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5·24 조치의 해제를 검토 중이라고 밝혀 논란이 됐다가 통일부에서 "그런 일 없다"고 진화에 나서는 해프닝도 있었다.이례적으로 5·24조치의 사문화를 언급한 정부의 움직임은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초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미·북 대화가 교착 상태에 빠진 상태인만큼 한국이라도 나서서 독자적으로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겠다고 선언했던 흐름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올초 발표됐던 북한 개별관광을 비롯해 한국이 독자적으로 북한과 교류 및 협력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고 통일부에 여러 차례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 21일 기자들과 만나서도 “어제 5·24 조치 발표와 관련해 해석들이 좀 있었는데 워딩들은 상당히 고민해서 선택했다”며 계획된 발표였음을 재확인시키기도 했다.

다만 정부는 현 시점에서 5·24조치의 공식 폐기 선언을 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사과가 없는 상태에서 5·24조치를 해제하면 야당의 반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일부가 5·24조치 효력과 관련해 언급을 한 다음날인 지난 21일 황규환 미래통합당 부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천안함 용사들은, 그 용사들의 가족들은 북한을 용서한 적이 없다. 그런데 누가 무슨 자격으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푼다는 말인가"며 "국민 생명을 담보로 한 문 정권의 북한 사랑에 국민의 인내심은 한계치를 넘어섰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 21일 5.24 조치의 폐기를 검토하느냐는 질문에 “(실효성 상실이라는 통일부 입장 발표와) 그것(폐기 선언)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그러나 5·24조치에 더 이상 구애받지 않는 방향으로 대북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통일부는 남북 교류협력을 제한·금지할 때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는 남북교류협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 예고하며 관련 법률 토대 마련에 나섰다. 오는 27일에는 남북교류협력법에 대한 온라인 공청회를 열고 관계자들을 비롯해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할 방침이다.5·24조치는 이명박 정부가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두 달 뒤 북측의 책임을 촉구하며 발표한 행정조치다. △남북 교역을 위한 모든 물품의 반출ㆍ반입 금지 △개성공단과 금강산지구를 제외한 방북 불허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불허 △대북 신규투자 금지 △대북 지원사업의 원칙적 보류 등 당시 진행하던 남북협력사업을 전면 중단한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역대 정부를 거쳐 남북관계 상황에 따라 유연화해왔다. 2011년 8월 7대 종단 대표의 방북을 계기로 교역 중단에 관한 유연화 적용했고, 2013년에는 나진 하산 물류사업을 예외사업으로 인정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5·24조치는 현재 국민 방북 불허 및 북한주민과의 접촉 제한, 대북지원 등은 유명무실해졌다. 다만 북한 선박의 남한 해역 운항 및 입항 금지, 남북교역 및 대북 신규투자 중단 등은 대체로 이행되고 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