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명분에 '몸집 불리기' 나선 정부…'빅브라더' 논란도

질병관리청 승격 21대 국회 최우선 과제
정부,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예고
역대 최대 규모 정부 탄생 '초읽기'
비용·관리 문제 이어 감시·보안 위험성 제기
서울중앙지법 출입구에서 관계자가 발열체크를 하고 있다. 2020.5.15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를 계기로 정부의 '몸집 불리기'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안전 명분'을 이유로 역대 최대 규모의 '큰 정부'를 예고하고 있어서다.

◆ 정부, 질병관리본부 → 질병관리청으로 승격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청와대는 25일 질병관리본부를 '청(廳)'으로 승격하는 문제에 대해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행정안전부 중심으로 보건복지부 등과 구체적으로 논의 중이며 거의 마지막 협의 과정에 있다"고 밝혔다.

이어 "몇 가지 쟁점이 남아 있어 그 쟁점을 해소하는 과정에 있지만 이번주 안에 마무리될 것"이라며 "정부 입법을 통해 법안이 국회에 제출될 것이고, 절차를 밟고 나면 6월쯤 가능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청와대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질병관리본부의 질병관리청 승격을) 21대 국회의 최우선 입법 과제로 추진해 주기 바란다"며 대통령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밝힌 코로나19 대책을 신속하게 추진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당시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눈앞의 위기를 보면서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며 방역보건 체계 강화, 질병관리본부 승격, 3차 추가경정예산안 추진 등 방역 대책의 신속한 추진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구상은 질본의 역량 강화를 위해 무엇보다 독립성 보장이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른 선택으로 풀이된다. 미래 감염병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의 일환으로 조직을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참여정부 초기인 2003년 12월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라 2004년부터 출범한 질본은 전신인 국립보건원을 확대·개편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뒤 16년간 복지부 산하의 현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카드 '만지작'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정부는 감염병 안전에 이어 '노동 안전'에도 집중하고 있다. 노동 현장에서 법·제도 개선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노사정 실태조사를 시행하기로 한 것은 물론,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달 27일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의제별 위원회인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노사정 합의문을 발표했다.합의문에는 과로사 방지대책을 비롯해 ▲플랫폼노동 등 서비스부문의 신종 유해위험요인 파악과 법·제도 개선 ▲중소기업 산재예방사업 지원을 위한 정부예산 매년 증액 ▲산업안전보건행정 전문성 제고를 위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검토 등을 포함했다.

특히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이 두드러진다는 평가다. 산업안전보건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채용·교육훈련·경력관리 시스템(인사구조)을 마련하기로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는 질병관리청 승격에 이은 또 하나의 정부 부처 신설로, '슈퍼 정부' 탄생이라는 비판에 불을 지피고 있다.

◆ 유발 하라리의 지적…"24시간 감시 사회"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미 '슈퍼 정부'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는 위기 상황에서 꺼내든 각국의 주요 통제정책을 두고 "모든 사람을 24시간 감시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질병관리청을 만들면 정부 조직은 현행 18부·5처·17청에서 18부·5처·18청으로 바뀐다. 이는 역대 가장 큰 정부였던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18부·4처·18청을 넘어서는 것이다. 여기에 산업안전보건청이 더해질 경우 정부 규모는 역대급으로 몸집이 불어난다. 비용·관리 문제와 함께 정부에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돼 '빅브라더'에 대한 염려가 커지는 탓이다.

실제로 노래방 이용자에 대해 QR코드를 도입하겠다는 정부의 발표 이후 우려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정부는 24일 클럽과 노래방 등 감염병 집단감염 위험시설에 대한 출입자 명부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QR코드를 기반으로 한 전자출입명부를 6월부터 도입한다고 밝혔다.

전자출입명부 시스템이 도입되면 노래방 이용자는 입장 전 네이버 등 QR코드 발급회사에서 스마트폰으로 1회용 QR코드를 발급받아 시설관리자에게 제시한다. 시설관리자는 이 QR코드를 스캔해 정부가 개발한 시설관리자용 애플리케이션(앱)에 이용자의 방문기록을 생성해야 한다.
전자출입명부 [사진=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공]
정부도 사생활 논란을 의식한 듯 코로나19 위기 단계에서만 한시적으로 운영하고 수집한 정보는 4주 뒤 폐기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정보 기술은 늘 보안 문제를 수반한다. 동사무소에서 근무한 한 사회복무요원의 정보 접근으로 스토킹 피해자가 발생한 것과 같은 사례를 보듯 관리에 대한 불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 모든 지자체가 QR코드 정책의 적용 대상이어서 이같은 우려에 힘이 실린다.

코로나19의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국면에서 세계 각국은 정부의 권한을 전면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공항과 기차역 등 사람들이 많이 찾는 대중시설에 발열측정기와 AI(인공지능) 안면인식기를 설치해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 프랑스 일부 도시에선 시민들의 '사회적 거리두기' 감시를 위해 드론을 띄웠다. 이스라엘은 법원 영장 없이 코로나19 잠재 감염자들의 휴대폰에 접근해 실시간 위치를 빼낼 수 있는 긴급명령까지 발동했다.

'슈퍼 정부'는 공동체 통제와 감시 수단으로서의 위험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평가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미 '슈퍼 정부'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는 위기 상황에서 꺼내든 각국의 주요 통제정책을 두고 "모든 사람을 24시간 감시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