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완 동북아평화연대 이사장 "코로나19는 한민족 발전에 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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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이사장에 취임…"디아스포라 시민단체 연대에 앞장서겠다"
"친구 도우면서 친척을 왜 못 돕나"…"30년간 재외동포 연구에 매달려" "내년이면 북방동포 지원단체 동북아평화연대가 창립 20년을 맞습니다. 아이들이 공기놀이할 때도 20년이 되면 새로운 방식의 '꺾기'를 하는데, 지금 형편으로는 기념행사는 커녕 명맥도 잇기 어려운 처지가 됐죠. 회원 관리체계를 정비하고 조직을 추슬러 하루빨리 단체를 본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4월 25일 동북아평화연대 제6대 이사장으로 선임된 임채완(69) 전남대 명예교수는 26일 연합뉴스 기지와 만나 취임 한 달을 맞은 소감과 계획을 털어놓았다.
"이사장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여러 차례 고사했습니다.
아내도 '재외동포에 관한 일이라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할 만큼 하지 않았느냐'며 만류했죠. 그러나 동북아평화연대의 딱한 처지를 외면할 수 없었고 오랫동안 친분을 다진 창립 멤버들의 간청을 뿌리치기도 힘들더군요. 소명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생각에 중책을 떠맡기로 했습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광주광역시 집에 아내를 남겨둔 채 서울로 올라와 용산구 원효로 동북아평화연대 사무실 인근에 원룸을 얻어 지내고 있죠" 이 단체의 근원은 1996년 발족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조선족(중국동포) 사기 피해 대책 마련에 나선 1999년 1월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산하 재외동포센터에서 2001년 10월 별도 사단법인으로 독립했다.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CIS) 동포(고려인)와 중국동포를 위한 지원 사업과 제도 개선 활동을 펼치며북방동포 지원단체의 맏형이자 네트워크의 구심점 구실을 해왔다.
남북한 공동행사 때마다 등장하는 한반도기도동북아평화연대가 처음 만들었다. 러시아 우수리스크에 고려인문화센터를 준공하고 중국 옌볜(延邊)에 창업지원센터를 개설하는가 하면 2014년에는 '고려인 강제이주 150주년 기념 유라시아 대장정 국민 랠리'를 성사시켰다.
2017년에는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행사를 펼치며 '고려인 4세 추방 방지를 위한 입법청원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보수 정권을 거치며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사업이 중단되고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활동이 위축되고 조직이 와해 지경에 이르렀다.
이광규·강영석·도재영에 이어 제4대 김봉준 이사장과 제5대 권오병 이사장도 잇따라 중도 사퇴해 수장의 공백 상태를 맞았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임채완 이사장은 재외동포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공주사범대와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10 대학에서 국제관계와 북한정치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부임해 아태지역연구소장·사회과학연구원장·사회과학대 학장 등을 역임했다.
"1990년 국제관계사를 연구하러 소련을 찾았다가 고려인들과 처음 만났습니다.
나는 러시아어를 모르고 그들은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데도 마주 앉아 손짓 발짓 해가며 떠들다 보니 신기하게 소통이 되더군요.
이들의 기구한 사연을 들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때부터 재외동포 연구와 교류 협력에 매달렸으니 꼬박 30년이 됐네요"
광주시민 등의 후원을 받아 1991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6개 한글학교를 세우는가 하면 2003년과 2006년에는 전남대에 각각 세계한상문화연구단을 발족시키고 글로벌디아스포라학과를 개설했다.
2012년에는 16개국 230여 명의 학자와 함께 세계디아스포라학회를 결성하고 2016년에는 재외동포연구원을 설립해 지금까지 각각 회장과 원장을 맡고 있다.
이 단체와의 인연도 깊어 초창기부터 광주전남 동북아평화연대 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포상, 교육부·통일부 장관 표창, 재외동포신문 올해의 인물상, 광주시민대상 등을 받았다. "재외동포 관심과 이해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병역이나 세금이나 건강보험 등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누리려 한다는 시선이 많죠. 그러다 보니 재난지원금 대상에서도 빠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33만 다문화가정을 위해서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전국에 218개나 있는데 100만 명이 넘는 귀환 동포를 위한 기관은 5곳에 불과합니다.
친구를 도우면서, 친척을 왜 돕지 못합니까"
임 이사장은 "국권을 빼앗겼을 때나 나라 힘이 없을 때는 재외동포들을 챙겨주지 못했다 해도 이제는 먹고살 만해졌으니 돌아온 동포들을 껴안고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동북아평화연대 정상화에 힘을 쏟는 한편 디아스포라 관련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재외동포 정책 강화와 법제도 개선 운동에 나설 계획이다.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환경이 많이 달라졌는데도 기본 틀은 그대로죠. 또 동포 관련 업무가 외교부·법무부·고용노동부·교육부·여성가족부 등 12개 부처로 분산돼 있다 보니 정책의 일관성에 문제가 생기고 중복 지원 현상이나 사각지대가 나타납니다.
동포청을 만들어 관련 예산과 인력을 한군데로 모으면 훨씬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죠. 해외 한국어 교육기관이 외교부의 한글학교, 교육부의 한국학교, 문화체육관광부의 세종학당 등으로 분산된 것도 문제입니다" 임 이사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인 대유행 사태가 한민족 네트워크에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 세계가 한국의 방역 역량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고, 180개국 750만 동포가 모국에 자긍심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행사를 재외동포까지 하나로 묶는 이벤트로 연결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국가 중심주의, 자국우선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19세기와는 분명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겠지만 세계한민족공동체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기대감도 높아질 겁니다. 재외동포를 지원하고 한민족 네트워크를 발전시키는 것은 후손을 위한 책무이자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합니다"
/연합뉴스
"친구 도우면서 친척을 왜 못 돕나"…"30년간 재외동포 연구에 매달려" "내년이면 북방동포 지원단체 동북아평화연대가 창립 20년을 맞습니다. 아이들이 공기놀이할 때도 20년이 되면 새로운 방식의 '꺾기'를 하는데, 지금 형편으로는 기념행사는 커녕 명맥도 잇기 어려운 처지가 됐죠. 회원 관리체계를 정비하고 조직을 추슬러 하루빨리 단체를 본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4월 25일 동북아평화연대 제6대 이사장으로 선임된 임채완(69) 전남대 명예교수는 26일 연합뉴스 기지와 만나 취임 한 달을 맞은 소감과 계획을 털어놓았다.
"이사장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여러 차례 고사했습니다.
아내도 '재외동포에 관한 일이라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할 만큼 하지 않았느냐'며 만류했죠. 그러나 동북아평화연대의 딱한 처지를 외면할 수 없었고 오랫동안 친분을 다진 창립 멤버들의 간청을 뿌리치기도 힘들더군요. 소명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생각에 중책을 떠맡기로 했습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광주광역시 집에 아내를 남겨둔 채 서울로 올라와 용산구 원효로 동북아평화연대 사무실 인근에 원룸을 얻어 지내고 있죠" 이 단체의 근원은 1996년 발족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조선족(중국동포) 사기 피해 대책 마련에 나선 1999년 1월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산하 재외동포센터에서 2001년 10월 별도 사단법인으로 독립했다.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CIS) 동포(고려인)와 중국동포를 위한 지원 사업과 제도 개선 활동을 펼치며북방동포 지원단체의 맏형이자 네트워크의 구심점 구실을 해왔다.
남북한 공동행사 때마다 등장하는 한반도기도동북아평화연대가 처음 만들었다. 러시아 우수리스크에 고려인문화센터를 준공하고 중국 옌볜(延邊)에 창업지원센터를 개설하는가 하면 2014년에는 '고려인 강제이주 150주년 기념 유라시아 대장정 국민 랠리'를 성사시켰다.
2017년에는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행사를 펼치며 '고려인 4세 추방 방지를 위한 입법청원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보수 정권을 거치며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사업이 중단되고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활동이 위축되고 조직이 와해 지경에 이르렀다.
이광규·강영석·도재영에 이어 제4대 김봉준 이사장과 제5대 권오병 이사장도 잇따라 중도 사퇴해 수장의 공백 상태를 맞았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임채완 이사장은 재외동포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공주사범대와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10 대학에서 국제관계와 북한정치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부임해 아태지역연구소장·사회과학연구원장·사회과학대 학장 등을 역임했다.
"1990년 국제관계사를 연구하러 소련을 찾았다가 고려인들과 처음 만났습니다.
나는 러시아어를 모르고 그들은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데도 마주 앉아 손짓 발짓 해가며 떠들다 보니 신기하게 소통이 되더군요.
이들의 기구한 사연을 들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때부터 재외동포 연구와 교류 협력에 매달렸으니 꼬박 30년이 됐네요"
광주시민 등의 후원을 받아 1991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6개 한글학교를 세우는가 하면 2003년과 2006년에는 전남대에 각각 세계한상문화연구단을 발족시키고 글로벌디아스포라학과를 개설했다.
2012년에는 16개국 230여 명의 학자와 함께 세계디아스포라학회를 결성하고 2016년에는 재외동포연구원을 설립해 지금까지 각각 회장과 원장을 맡고 있다.
이 단체와의 인연도 깊어 초창기부터 광주전남 동북아평화연대 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포상, 교육부·통일부 장관 표창, 재외동포신문 올해의 인물상, 광주시민대상 등을 받았다. "재외동포 관심과 이해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병역이나 세금이나 건강보험 등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누리려 한다는 시선이 많죠. 그러다 보니 재난지원금 대상에서도 빠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33만 다문화가정을 위해서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전국에 218개나 있는데 100만 명이 넘는 귀환 동포를 위한 기관은 5곳에 불과합니다.
친구를 도우면서, 친척을 왜 돕지 못합니까"
임 이사장은 "국권을 빼앗겼을 때나 나라 힘이 없을 때는 재외동포들을 챙겨주지 못했다 해도 이제는 먹고살 만해졌으니 돌아온 동포들을 껴안고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동북아평화연대 정상화에 힘을 쏟는 한편 디아스포라 관련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재외동포 정책 강화와 법제도 개선 운동에 나설 계획이다.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환경이 많이 달라졌는데도 기본 틀은 그대로죠. 또 동포 관련 업무가 외교부·법무부·고용노동부·교육부·여성가족부 등 12개 부처로 분산돼 있다 보니 정책의 일관성에 문제가 생기고 중복 지원 현상이나 사각지대가 나타납니다.
동포청을 만들어 관련 예산과 인력을 한군데로 모으면 훨씬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죠. 해외 한국어 교육기관이 외교부의 한글학교, 교육부의 한국학교, 문화체육관광부의 세종학당 등으로 분산된 것도 문제입니다" 임 이사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인 대유행 사태가 한민족 네트워크에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 세계가 한국의 방역 역량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고, 180개국 750만 동포가 모국에 자긍심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행사를 재외동포까지 하나로 묶는 이벤트로 연결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국가 중심주의, 자국우선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19세기와는 분명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겠지만 세계한민족공동체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기대감도 높아질 겁니다. 재외동포를 지원하고 한민족 네트워크를 발전시키는 것은 후손을 위한 책무이자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합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