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신 롯데홈쇼핑 대표, '존폐 기로' 롯데홈쇼핑 되살린 '30년 유통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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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탐구 - 이완신 롯데홈쇼핑 대표“롯데홈쇼핑 대표로 가세요.”
패션 앞세워 3년 만에 업계 1위 노린다
구원투수로 깜짝 발탁
재승인 청문회서 보여준 진심
홈쇼핑 강자로 우뚝
2016년 말 이완신 롯데백화점 마케팅부문장은 인사 통보를 받았다. 그룹 임원 인사가 발표되기 이틀 전이었다. 다른 계열사로 옮길 때는 여유를 두고 당사자에게 귀띔을 해주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이때는 달랐다. 급박하게 인사가 이뤄졌다. 통보도 그만큼 늦었다. 그룹이 경영권 분쟁과 검찰 수사를 동시에 겪은 직후였다. 이 부문장은 30년간 근무하던 백화점을 떠나 하루아침에 롯데홈쇼핑 수장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이 대표는 준비 없이 취임했다. TV 홈쇼핑 채널을 이전에는 제대로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후 빠르게 회사를 바꿔놓으며 ‘준비된’ 최고경영자(CEO) 같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롯데홈쇼핑을 백화점에 버금가는 패션 채널로 만들었다. 이전에는 거의 시도하지 않았던 직매입 상품도 늘렸다. 그 결과는 성과로 나타났다.
CJ오쇼핑 GS홈쇼핑 현대홈쇼핑 등에 가려져 있던 롯데홈쇼핑은 수익성 면에선 이제 업계 1위를 다툴 정도가 됐다. 올 1분기 롯데홈쇼핑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690억원과 370억원.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뛰었다. 영업이익은 현대홈쇼핑(1분기 영업이익 289억원)과 GS홈쇼핑(318억원)을 제쳤고, 1위 CJ오쇼핑(379억원)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진심으로 소통…3년 재승인 받아내그가 2017년 초 대표에 오를 때만 해도 롯데홈쇼핑에 대한 전망은 암울했다. 지금 같은 실적을 기대한 사람은 드물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홈쇼핑 사업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 많았다.
실제로 롯데홈쇼핑의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2015년 홈쇼핑 재승인 심사에서 전·현직 임원이 중소기업 납품 비리에 연루된 것이 드러났다. 비위 사실을 심사 과정에서 고의로 누락한 일도 있었다. 정치인들을 상대로 부적절한 로비를 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비리 홈쇼핑’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정부는 2015년 심사 때 원래 5년간 연장해줘야 하는 방송 허가 기간을 3년으로 줄였다. ‘시한부 삶’을 통보한 셈이었다. 업계에선 “다음 재승인 심사에선 떨어질 게 확실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 대표는 취임 직후 조직을 추스르는 데 집중했다. 회사 컴플라이언스 제도를 강화했다. ‘정도 경영’을 우선했다. 재승인을 위해 정치인을 만나거나 이해당사자와 접촉하는 것은 삼갔다. 취임 후 1년은 후딱 갔다. 2018년 5월 재승인 심사가 닥쳤다. 마지막 관문은 대표 청문회였다. 이 대표는 비공개 청문회를 앞두고 300여 개나 되는 예상 질문을 작성해 ‘모범 답안’을 달달 외웠다. 그러나 정작 청문회 때는 엉뚱한 답을 했다.그는 심사위원의 ‘당신의 비전이 뭡니까’라는 질문에 “가족 같은 회사를 만들어서 사회에 기여하고 직원들이 오래 다니고 싶게 하겠다”고 답했다. “중소기업 판로를 확장하고 혁신 제품을 많이 발굴하겠다”는 식의 준비된 답변이 아니었다. 그러나 진심이었다. 그는 청문회 직전 한 젊은 직원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문자를 소개했다. “다른 말은 없고 ‘응원합니다. 파이팅하세요’라고만 쓰여 있더군요.” 그러면서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심사위원장은 한동안 말을 못했다. 심사 결과는 또 한 번 ‘3년짜리 재승인’이었다. ‘조건부’란 꼬리표가 붙었지만 어쨌든 시한부 삶을 연장할 수는 있었다.
패션 집중 공략해 수익성 끌어올려
이 대표는 이후 수익성에 가장 신경 썼다. 3년이란 시간은 경영자 입장에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다. 마진이 많이 남고 소비자도 좋아할 만한 대표 상품을 늘리기로 했다. 특히 패션 분야를 집중 공략하기로 했다.이 대표는 패션에 자신있었다. 롯데백화점에서 여성의류팀장을 지냈고, 부산 본점 점장과 서울 본점 점장 등을 거치며 여성 패션에는 감이 있었다. 그가 직원들에게 내린 지시는 간단했다. “TV 홈쇼핑답지 않은 고급스러운 상품을 선보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 중 하나가 작년 2월 처음 선보인 ‘라우렐’이었다. 라우렐은 독일의 유명 패션 브랜드다. 홈쇼핑에는 내보내지 않았다. 이 대표가 직접 라우렐 측과 소통하며 유치 의지를 보이자 라우렐 측 태도가 바뀌었다.
라우렐은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작년에만 300억원어치를 팔았다. 패션 상품의 ‘성공 기준선’인 연간 매출 100억원을 훌쩍 넘겼다. 작년 11월 선보인 ‘지오스피릿’도 그랬다. 방송 두 번 만에 주문액이 40억원에 이르렀다. 이런 브랜드들이 잇달아 성공하면서 롯데홈쇼핑은 패션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올렸다. CJ오쇼핑, GS홈쇼핑 등에 비해 뒤늦게 시작한 패션이지만 지금은 “가장 잘한다”는 평가를 듣는다. 올해도 새로운 브랜드를 속속 내놓고 있다.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 ‘블랙마틴싯봉’도 최근 출시했다. 연내 ‘질바이질스튜어트’ 등 20~30대 젊은 층이 좋아하는 브랜드도 내놓기로 했다.
직매입 상품을 확장하는 것도 이 대표의 지시였다. “남의 제품을 팔아주고 안전하게 수수료만 받는 게 아니라 직접 상품을 구매해 소비자들에게 선보이라”고 지시했다. 올 1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여행·항공 등의 매출이 급격히 감소했을 때 직매입 상품의 위력이 발휘됐다. 독일 건강식품 브랜드 ‘오쏘몰’, 구찌 선글라스 등의 직매입 상품을 여행·항공이 빠진 방송시간에 투입했다. 이들 상품은 ‘대박’을 터뜨렸다. 방송 두세 번 만에 전부 수십억원어치씩 팔리며 매진됐다.
중소기업 상생에도 힘써
이 대표가 주력한 또 다른 분야는 중소기업 ‘상생’이었다. 다른 데는 다 빠져도 중소기업의 해외 판로 개척 행사만은 반드시 참석했다. 이 대표를 보려고 일부러라도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이들을 중소기업과 연결해주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이 탓에 해외 출장을 꺼리는 그였지만 짧게라도 꼭 다녀왔다. 예컨대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중소기업 상생박람회는 1박3일로 다녀왔다. 러시아 모스크바 행사 출장은 2박4일이었다.
그는 내년 5월 재승인 심사를 앞두고 관련 태스크포스팀을 최근 출범시켰다. 철저히 준비해 온전한 5년짜리 재승인을 받아내는 것이 목표다. 그래야 과거와 ‘단절’하고, 직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줄 수 있다고 그는 판단했다.
■ 이완신 롯데홈쇼핑 대표△1960년 서울 출생
△1987년 고려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1987년 롯데백화점 입사
△2003년 롯데백화점 안양점 점장
△2012년 롯데백화점 본점 점장
△2014년 롯데백화점 마케팅부문장
△2017년 롯데홈쇼핑 대표
△2020년 롯데홈쇼핑 대표이사 사장
안재광/노유정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