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1% 사는데도 정부승인'…日, 엘리엇 방지법 시행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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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7일부터 한국투자공사(KIC) 등 우리나라 국부펀드를 포함해 해외 자본이 도요타, 소니, 소프트뱅크 등 일본 주요 상장기업의 주식을 1% 이상 인수하려면 일본 정부의 사전심사를 받아야 한다. '국가 안보에 중요한 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일본 대표 기업 대부분을 보호 대상에 집어넣어 엘리엇매니지먼트 같은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방지하는 법이 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배달앱·목욕탕 체인도 '국가안보기업'27일 한국경제신문의 집계 결과 시가총액 10대 기업 가운데 7곳, 50대 기업의 25곳이 일본 정부의 사전심사를 받아야 해외 자본이 지분 1% 이상을 살 수 있는 기업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사전심사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한 제약사까지 합하면 시총 10대 기업 가운데 9곳이 규제대상이다.
일본 재무성은 지난 8일 사전심사 대상 기업 518곳의 명단을 발표했다. 정부의 사전심사 기준을 지분 10%에서 1%로 대폭 강화한 개정 외환법이 작년 9월 일본 국회를 통과한데 따른 후속조치였다. 무기, 전력, 통신 등 국가 안전보장상 중요한 12개 분야가 주력 사업인 일부 기업을 보호한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도쿄 1부증시 상장기업(2170개) 4분의 1이 규제대상에 포함됐다.도요타, 혼다 등 자동차 회사와 소니, 도시바, 샤프 등 전자회사, 이토추상사 등 종합상사 등 일본 대표 기업은 거의 모두 지정됐다. 배달앱인 데마에칸과 목욕탕 체인인 고쿠라쿠유홀딩스 등 국가 안보와 무관한 기업도 다수 포함됐다.일본 재무성은 지분을 인수하면 정부에 사후 보고해야 하는 기업 1584곳도 발표했다. 표면적으로는 사후보고지만 외환법을 위반한 적이 있으면 1584개 기업에 대해서도 사전심사를 받아야 한다. 사전심사 대상 518개사를 포함하면 전체 상장기업(3713개사)의 56.6%가 보호 대상으로 지정됐다. 시총 30대 기업 가운데 외국인이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는 기업은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이 유일하다.
◆상장사 57% 보호대상..선정 기준 비공개
국부펀드(SWF)도 사전심사를 받아야 한다. 한국투자공사(KIC)와 국민연금 등 우리나라의 투자 큰손들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일본 재무성은 기업의 사업기밀을 누설할 우려가 있다며 선정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의 입맛대로 보호 대상을 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이 때문에 투자전문가들은 개정 외환법이 행동주의 펀드의 기업 공격이나 주주제안을 원천봉쇄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보고 있다. '5% 룰'(상장사 지분 5%를 새로 사면 공시해야 하는 제도)을 활용해 지분을 은밀히 사모은 뒤 기습공격하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단골 전략이 불가능해져서다. 엘리엇이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을 공격할 때도 이 방법을 썼다.
엘리엇은 2015년 4월 삼성물산 지분 4.95%를 매집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에 반대했다. 2018년 4월에는 현대차(2.9%), 현대모비스(2.6%), 기아자동차(2.1%) 등 현대차그룹 핵심 계열사 주식을 5% 미만 사들인 후 현대차 지배구조 개선안에 어깃장을 놨다. 일본 로펌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와 상장사에 소수지분을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의 활동이 차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 외환법은 중국 자본이 코로나19로 주가가 급락한 자국 기업을 인수·합병(M&A)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미국 및 유럽과 보조를 맞춘 조치다. 하지만 경영권 인수에 제동을 거는 미국 및 유럽과 달리 소수 지분을 사는데조차 정부 승인을 의무화한 개정안은 일본 내에서도 우려이 목소리가 높다. 일본 증권거래의 70%를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이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5월15일까지 외국인 투자가들은 14주 연속 일본주식을 8조엔(약 92조원) 순매도했다. 미국과 일본 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대표는 "주요 전략사업의 경영권 지분을 살 때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승인을 받도록 한 미국보다 훨씬 엄격해 거래 자체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배달앱·목욕탕 체인도 '국가안보기업'27일 한국경제신문의 집계 결과 시가총액 10대 기업 가운데 7곳, 50대 기업의 25곳이 일본 정부의 사전심사를 받아야 해외 자본이 지분 1% 이상을 살 수 있는 기업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사전심사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한 제약사까지 합하면 시총 10대 기업 가운데 9곳이 규제대상이다.
일본 재무성은 지난 8일 사전심사 대상 기업 518곳의 명단을 발표했다. 정부의 사전심사 기준을 지분 10%에서 1%로 대폭 강화한 개정 외환법이 작년 9월 일본 국회를 통과한데 따른 후속조치였다. 무기, 전력, 통신 등 국가 안전보장상 중요한 12개 분야가 주력 사업인 일부 기업을 보호한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도쿄 1부증시 상장기업(2170개) 4분의 1이 규제대상에 포함됐다.도요타, 혼다 등 자동차 회사와 소니, 도시바, 샤프 등 전자회사, 이토추상사 등 종합상사 등 일본 대표 기업은 거의 모두 지정됐다. 배달앱인 데마에칸과 목욕탕 체인인 고쿠라쿠유홀딩스 등 국가 안보와 무관한 기업도 다수 포함됐다.일본 재무성은 지분을 인수하면 정부에 사후 보고해야 하는 기업 1584곳도 발표했다. 표면적으로는 사후보고지만 외환법을 위반한 적이 있으면 1584개 기업에 대해서도 사전심사를 받아야 한다. 사전심사 대상 518개사를 포함하면 전체 상장기업(3713개사)의 56.6%가 보호 대상으로 지정됐다. 시총 30대 기업 가운데 외국인이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는 기업은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이 유일하다.
◆상장사 57% 보호대상..선정 기준 비공개
국부펀드(SWF)도 사전심사를 받아야 한다. 한국투자공사(KIC)와 국민연금 등 우리나라의 투자 큰손들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일본 재무성은 기업의 사업기밀을 누설할 우려가 있다며 선정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의 입맛대로 보호 대상을 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이 때문에 투자전문가들은 개정 외환법이 행동주의 펀드의 기업 공격이나 주주제안을 원천봉쇄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보고 있다. '5% 룰'(상장사 지분 5%를 새로 사면 공시해야 하는 제도)을 활용해 지분을 은밀히 사모은 뒤 기습공격하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단골 전략이 불가능해져서다. 엘리엇이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을 공격할 때도 이 방법을 썼다.
엘리엇은 2015년 4월 삼성물산 지분 4.95%를 매집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에 반대했다. 2018년 4월에는 현대차(2.9%), 현대모비스(2.6%), 기아자동차(2.1%) 등 현대차그룹 핵심 계열사 주식을 5% 미만 사들인 후 현대차 지배구조 개선안에 어깃장을 놨다. 일본 로펌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와 상장사에 소수지분을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의 활동이 차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 외환법은 중국 자본이 코로나19로 주가가 급락한 자국 기업을 인수·합병(M&A)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미국 및 유럽과 보조를 맞춘 조치다. 하지만 경영권 인수에 제동을 거는 미국 및 유럽과 달리 소수 지분을 사는데조차 정부 승인을 의무화한 개정안은 일본 내에서도 우려이 목소리가 높다. 일본 증권거래의 70%를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이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5월15일까지 외국인 투자가들은 14주 연속 일본주식을 8조엔(약 92조원) 순매도했다. 미국과 일본 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대표는 "주요 전략사업의 경영권 지분을 살 때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승인을 받도록 한 미국보다 훨씬 엄격해 거래 자체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