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권 딱지'가 뭐길래…평택 고덕신도시서 줄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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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딱지전매 무효' 판결 후폭풍2기 신도시인 경기 평택 고덕국제신도시에서 이주자에게 주어지는 택지 분양권인 ‘딱지’ 거래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이 이곳에서 이뤄지던 딱지 전매 계약이 무효라는 판결을 내린 데 따른 후폭풍이다. 고덕을 시작으로 광교, 위례 등 다른 신도시로도 소송전이 번지고 있다.
원주민-매수자 소송 500건 넘어
27일 부동산업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에서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고덕신도시 택지 분양권 계약 무효확인 소송’과 관련해 보낸 관계자 문서제출 명령은 370건에 달한다.통상 재판 한 건에 문서제출 명령 접수가 한 건씩인 것을 고려하면 이만큼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1심 판결이 나온 소송까지 더하면 500건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소송은 딱지를 전매한 원주민이 계약을 되돌려달라는 것이다. 2008년부터 조성된 고덕신도시는 지난해 7월부터 4000여 가구가 입주를 마쳤다. 딱지를 통해 받은 상당수 택지에도 주택 등이 들어섰다. 취소 판결이 내려지면 전매 자체가 원천 무효가 되기 때문에 소유권이 원주민에게 되돌아가게 돼 큰 혼란이 예상된다. 이 때문에 일부 원주민은 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수억원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2017년 10월에 이어 2019년 3월 관행적으로 인정되던 딱지 전매의 효력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고덕신도시에서 계약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이 줄을 이었고, 광교 위례 등 다른 신도시에서도 같은 소송이 제기되고 있다.광교·위례·판교도…딱지 판 원주민 "계약 취소해 달라" 줄소송서울 송파구에 사는 A씨는 2010년 경기 평택 고덕국제신도시에서 이주자 택지 분양권인 ‘딱지’를 구입했다. 매매계약 당시 토지 공급 주체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권리의무 승계 계약도 맺었다. 이후 분양받은 토지에 4층짜리 상가주택을 짓고 1층 상가에 세입자까지 들였다.
하지만 올초 A씨는 예상치 못한 소장을 받았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로 10년 전 맺은 계약이 무효가 됐으니 토지 소유권을 다시 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A씨는 “당사자가 서로 합의해 계약했는데 이제 와서 무효라니 황당하다”며 “패소하면 세입자까지 받은 건물을 철거해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판례 뒤집은 대법원 판결2006년 9월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된 고덕신도시에서는 2025년까지 총 5만9000여 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수도권 2기 신도시 중에선 동탄2신도시 다음으로 큰 규모의 신도시다. 삼성전자 평택공장이 들어서고 KTX 지제역 개통, 미군기지 이전 등 굵직한 개발 호재로 투자자의 관심을 모았다.
택지개발 사업에서 토지를 수용당한 원주민에게는 주택 또는 상가를 우선적으로 분양받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LH 등이 시행하는 토지 보상은 통상 이주자 택지 대상자 선정, 통보, 택지 추첨, 계약 순으로 이뤄진다. 계약 후 권리관계가 확정된 딱지에는 비싼 웃돈이 붙는 게 일반적이다.
현실은 브로커 등이 달라붙어 본격적으로 웃돈이 붙기 전인 택지 추첨 이전 단계부터 전매가 이뤄진다. 전매된 딱지를 다시 전매하는 전전매 등을 거쳐 가격이 오른다. 모두 불법이다. 고덕신도시 인근 B공인 관계자는 “토지보상 착수 시점부터 이주자 택지 대상자라는 통보 서류만 있으면 전매가 가능했다”며 “일부 딱지는 프리미엄이 8억원까지 붙기도 했다”고 말했다.기존 사법부는 비록 적법하게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딱지 전매의 유효성을 인정해줬다. 당사자가 합의한 계약이고 이미 분양 및 건물 건축 등이 마무리된 상태에서 갑자기 계약이 무효가 되면 빚어질 시장 혼란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2017년 10월 대법원은 부산 명지국제신도시 등에서 거래된 분양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송에서 기존 판례를 뒤집고 LH의 공급계약 이전에 이뤄진 전매 계약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이어 2019년 3월 고덕신도시에서 제기된 소송에 대해 계약 과정에서 LH의 동의 절차를 거쳤더라도, 그 이전에 전전매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면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소송 지면 기존 건물 철거해야
대법원 판결 이후 고덕신도시에서는 소송 바람이 불었다. 도시 곳곳에 딱지를 매도한 원주민을 대상으로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승소를 이끌어내주겠다고 광고하는 변호사들의 포스터와 플래카드가 붙었다. 피소당한 매수자 모임인 고덕발전협의회 관계자는 “일부 원주민은 소송 취하 조건으로 수억원의 합의금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부동산업계 및 법조계에선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에서 진행 중인 1심 소송 대부분에서 계약 무효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미 1심 선고가 내려진 사건에서 공급계약 체결 후 전매가 한 번만 이뤄진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계약 무효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계약 무효 판결이 대법원에서까지 확정되면 소유권은 다시 원주민에게로 돌아가고, 이미 세워진 건물이 있다면 철거해야 한다. 건물을 세워 세입자까지 받은 현 소유주와 이들에게 대출을 해준 은행은 난감한 상황이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일부에서는 대법원 판결을 이용해 택지 추첨까지 기다렸다가 매수인에게 웃돈을 요구하거나 양도세를 떠넘기려는 시도까지 포착되고 있다”고 했다.
LH는 사실상 손쓸 방도가 없다. LH 관계자는 “보상 시점부터 공급계약 때까지 명의 변경에 대한 유의사항을 지속적으로 안내하고 있다”며 “하지만 딱지 전매는 신고 의무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전전매 등 불법 행위에 대한 파악이 어렵다”고 말했다.
■ 이주자 택지 분양권(딱지)택지 개발을 할 때 해당 지역에 살거나 생업을 갖고 있던 원주민에게 주어지는 주택·상가 우선 분양권. 속칭 ‘딱지’로 불린다.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라 원주민의 분양권 계약 체결 후 소유권 이전 등기 전까지 1회 전매가 가능하다.
신연수/이인혁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