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 거리로 나선 홍콩인들

홍콩보안법·국가법 등 '홍콩의 중국화'에 시민들 분노
국가법 심의 방청 '5명 제한'에 "알권리 박탈" 비난도
지난해보다 시위 참여 열기 훨씬 저조…"시민들 지친 탓"
"홍콩은 중국이 아닙니다. 위챗(微信·중국판 카카오톡) 등을 마음대로 검열하는 중국 본토와 달리 홍콩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곳입니다.

홍콩 사람들은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27일 오후 홍콩 최대 번화가인 센트럴 지역의 랜드마크 빌딩 앞에서 만난 회사원 보이 씨는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과 국가(國歌)법에 대한 견해를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이날 홍콩 의회인 입법회는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모독하는 사람에게 최고 징역 3년 형을 내릴 수 있는 국가법 2차 심의를 했다. 이에 홍콩 센트럴과 코즈웨이베이, 몽콕 등의 지역에서는 각각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모여 국가법과 홍콩보안법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광복홍콩 시대혁명", "악독 경찰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고, 홍콩 시위를 상징하는 '홍콩에 영광을' 등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센트럴 시위 현장에서 만난 한 20대 여성은 두렵지 않으냐는 말에 "절대 아니다"라고 답했다. 앞서 지난 22일 전인대 개막식에서는 외국 세력의 홍콩 내정 개입과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리즘 활동 등을 금지·처벌하고, 홍콩 내에 이를 집행할 기관을 수립하는 내용의 홍콩보안법 초안이 소개됐다.

이러한 내용의 홍콩보안법이 시행되면 반중 시위 등에 참여하는 사람이 최고 30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여성은 "우리는 지난해에도 우리의 힘을 모아 홍콩 정부가 추진하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을 막아냈다"며 "이번에도 홍콩 시민의 힘으로 홍콩보안법을 반드시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시위 참여 열기는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 때보다 훨씬 저조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난해 6월 12일 홍콩 입법회가 범죄인 인도 법안을 심의할 때는 수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입법회 주변으로 몰려들어 인근 도로를 모조리 점거하고 항의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입법회가 심의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시위 참여 열기가 지난해 9월 홍콩 정부의 송환법 철회 발표를 끌어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날 시위 양상은 지난해와 확연히 달랐다.

시위대 수가 적은 탓에 입법회 주변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센트럴, 코즈웨이베이 등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여야 했다.

시위 현장인 랜드마크 빌딩 앞 사거리에는 시위대보다 오히려 이를 취재하는 기자와 시위 진압 경찰의 수가 더 많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경찰이 3천500여 명을 동원해 삼엄한 경계에 나선 탓이라고 하지만, 지난해 6월 12일 입법회 시위 때 시위대가 5천여 명의 경찰력을 제압하고 입법회를 포위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시위 현장 인근에서 만난 40대 허 모 씨는 이에 대해 홍콩 시민들이 "지쳤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허 씨는 "1년 가까이 이어져 온 시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송환법보다 훨씬 강력한 홍콩보안법을 들고나와 홍콩인을 압박하고 있다"며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는 생각에 홍콩인들은 지치고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올해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발생하면서 홍콩인들은 급격한 경기침체에 시달리고 있다.

홍콩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작년 동기 대비 8.9%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 아시아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이에 호텔, 관광, 유통, 식당 등 많은 업종에서 실업자들이 급증하고 있어 이제 민주화 요구 시위보다는 사회 안정을 더 원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시위대는 국가법을 심의하는 입법회 주변에 거의 접근하지 못했다.

입법회 주변에는 시위 진압 경찰이 곳곳에 배치됐으며, 물을 담은 대형 플라스틱 통으로 만든 바리케이드가 입법회 주변을 둘러쌌다.

입법회로 통하는 육교 위로 올라서자 경찰이 설치한 검문소가 보였고, 이를 지키던 경찰은 기자증과 홍콩 신분증을 요구했다.

이날 경찰은 입법회로 통하는 도로나 육교마다 검문소를 설치하고, 정부청사나 입법회 공무원과 취재기자를 제외한 모든 시민의 입법회 접근을 차단했다.
입법회 안 대회의장에서는 국가법 심의가 한창이었다.

야당 의원들은 국가법보다 더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홍콩보안법을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입법회 주석은 중국 전인대가 제정하려는 법을 홍콩 의회가 논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이를 거부해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이한 것은 홍콩 시민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 법안을 심의하는데도 방청객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알고 보니 이날 입법회 측은 국가법 심의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시민의 수를 5명으로 제한했다고 한다.

홍콩 노동단체 홍콩직공회연맹의 캐럴 응(吳敏兒) 주석은 이날 입법회 방청을 거부당하자 "이토록 중요한 법안을 시민들이 지켜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이는 시민들의 알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홍콩에서는 홍콩보안법을 중국 전인대가 제정하는 것의 법적 정당성과 그 제정 과정에 홍콩 시민들이 전혀 참여할 수 없는 것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 홍콩보안법, 국가법 등을 둘러싼 홍콩 내 갈등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