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국회가 일한다고 해도 걱정스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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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탓 퇴조하는 세계화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지만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꾸는 전기가 된 사건들이 있다. 1929년 미국 증시 폭락 사태는 19세기 후반 시작된 제1차 세계화가 막을 내리는 계기가 됐다. 1970년대 초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는 훗날 세계화로 불리게 되는 새로운 흐름을 가속화했다.
각국은 산업주권 외치며
리쇼어링 유도하는데
한국은 여전히 反기업·親노조
규제만 잔뜩 더해질 판
누가 이런 규제정글로 들어올까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도 그런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많은 변화 가운데 생산의 세계화는 이미 역전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복잡한 세계적 공급망이 지닌 취약성이 여지없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중국으로부터 와이어링 하네스라는 비교적 단순한 부품의 공급이 중단되는 바람에 자동차 생산라인이 멈춰서는 일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비용 절감과 시장 선점 등의 이유로 해외로 진출한 기업을 본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리쇼어링(reshoring)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미국은 유턴 기업 지원을 위해 250억달러(약 30조원) 규모의 ‘리쇼어링 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도 2조7000억원 규모의 탈(脫)중국 리쇼어링 펀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유럽연합(EU) 각국 역시 ‘산업 주권’과 ‘자국 내 생산’을 외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 26일 친환경 자동차산업에 공적자금 80억유로(약 11조원)를 투입해 2025년까지 유럽에서 독보적인 전기·하이브리드카 생산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밝히면서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프랑스 내에서 생산하라고 푸조시트로엥과 르노 두 자동차회사의 리쇼어링을 압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연설에서 “한국 기업의 유턴은 물론 해외의 첨단산업과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과감한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우리에겐 절호의 기회”라면서다. 백번 지당하고 환영할 일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해외 진출 기업의 5.6%가 유인책의 조건에 따라 유턴할 의향을 밝히고 있다. 그대로 실현되면 고용 효과만 13만 명에 이른다.
문제는 현실이다. 반(反)기업 정서가 판치고, 각종 규제로 ‘집토끼’ 국내 기업들도 질식할 마당에 ‘산토끼’ 해외 진출 기업이 과연 투자금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돌아올까. 지난해 국내 설비투자는 7.6% 감소했다. 기업들의 해외 투자는 619억달러(약 76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들의 한국 내 투자는 전년 대비 21% 감소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국은 투자 유치가 평균 6% 늘었다. ‘투자 엑소더스’란 말은 괜한 엄살이 아니다. 대통령의 연설 뒤인 20일에도 LG전자가 경북 구미시의 TV 생산라인 두 개를 인도네시아로 옮기기로 했다. 이게 현실이다.30일 시작되는 21대 국회를 ‘일하는 국회’로 만들겠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선언이 우려되는 것도 이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것이다. 국회는 그동안 기업 활동을 촉진하기보다는 발목 잡는 일에 더 열심이었다. 역대 국회에서 통과된 법을 분석해보면, 규제를 폐지하거나 줄이는 법안보다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법안이 많았다. 20대 국회에서도 근로기준법 개정안, 서비스산업발전법,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등 경제 활성화 법안 처리는 무산됐다. 반면 기업 활동을 옥죄는 공정거래, 환경 및 안전 관련 규제 등은 늘어났다.
21대 국회는 달라질까. 177석으로 절대다수당이 된 민주당은 27일 당선자 워크숍을 열고 5대 분야의 개혁 과제를 선정하면서 공정경제와 부동산 대책도 포함시켰다. 이 때문에 20대 국회 때 경영계가 줄곧 우려를 나타내온 공정거래법과 상법 개정, 추가 부동산 대책 등 규제 강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리쇼어링을 외치는 정부지만 세계 각국이 법인세율을 내려가며 기업 유치에 나설 때 거꾸로 최고 세율을 올렸다. 반기업·친노조 일변도인 정책 기조에도 변함이 없다. 최저임금은 계속 올라가고 노동 공급은 더할 수 없이 경직됐다. 이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국회는 더 많은 규제를 예고하고 있다. 어느 기업이 죽음의 규제 정글로 스스로 걸어 들어올까. 국내외 기업이 발길을 돌려 나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해 보일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