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엘리엇 방지법' 도입…외국자본이 지분 1%만 사도 정부 승인 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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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총 50대 기업 중 25곳 대상다음달 7일부터 해외 자본이 도요타 소프트뱅크 등 일본 주요 상장기업 주식을 1% 이상 사려면 일본 정부의 사전 심사를 받아야 한다. 한국투자공사(KIC)와 국민연금 등 우리나라 기관투자가들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국가 안보에 중요한 기업의 보호’라는 명분이지만 실제로는 일본 대표 기업을 엘리엇매니지먼트 같은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행동주의 펀드 공격 원천 차단
'차이나머니' 견제 포석도
일본 재무성은 최근 이 같은 사전 심사 대상 기업 518곳을 선정했다. 사전 심사 기준을 지분 10%에서 1%로 대폭 강화한 개정 외환법이 작년 9월 국회를 통과한 데 따른 후속 조치였다. 시가총액 10대 기업 가운데 7곳, 50대 기업 가운데 25곳이 사전 심사를 받아야 한다.무기, 전력, 통신 등 국가 안보에 중요한 12개 분야 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와 달리 도쿄 1부증시 상장기업(2170개) 4분의 1이 포함됐다. 도요타 혼다 등 자동차회사와 소니 도시바 샤프 등 전자회사, 이토추상사 등 일본 대표 기업은 물론 배달 앱인 데마에칸과 목욕탕 체인인 고쿠라쿠유홀딩스 등 국가 안보와 무관한 기업도 다수 포함됐다.
재무성은 지분 인수를 사후 보고해야 하는 기업 1584곳도 지정했다. 외환법 위반 전력이 있는 해외 자본은 이 기업들에 대해서도 사전 심사를 받아야 한다. 전체 상장기업(3713개사)의 56.6%가 보호 대상인 셈이다. 시총 30대 기업 가운데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는 기업은 유니클로 운영사인 패스트리테일링이 유일하다.
개정 외환법은 중국이 코로나19로 주가가 급락한 자국 기업을 헐값에 인수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미국 및 유럽과 보조를 맞춘 조치다. 하지만 경영권 인수를 규제하는 미국, 유럽과 달리 소수 지분을 사는 것조차 정부 승인을 받도록 한 개정안은 일본 내에서도 우려를 사고 있다.우선 일본 증권 거래의 70%를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 가능성이 점쳐진다. 지난 5월 15일까지 외국인들은 14주 연속 일본 주식을 8조엔(약 92조원)어치 순매도했다. 행동주의 펀드 활동을 원천 봉쇄한 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5% 룰’(상장사 지분 5%를 새로 사면 공시해야 하는 제도)을 활용해 지분을 은밀히 사모은 뒤 기습 공격하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단골 전략이 불가능해져서다. 엘리엇이 2015년 삼성그룹과 2018년 현대자동차그룹을 공격할 때도 이 방법을 썼다. 일본 로펌 관계자는 “일본 정부의 과보호가 도리어 기업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