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12년형 받은 성폭행 미수범 2심서 무죄

법원 "Y-STR 유전자 감식자료 증거 안돼…인상착의도 달라"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성폭행 미수범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광주고법 제주재판부 형사1부(왕정옥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특수강도강간)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64)씨에 대해 징역 12년의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29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7월 8일 오전 2시 13분께 제주시의 한 2층 건물에 침입, 피해자 B(19·여)양의 방안에서 화장대를 뒤지던 중 잠에서 깨어난 B양을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범인은 B양이 깨어나자 피해자의 집 주방에서 식칼을 가지고 다시 들어가 B양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통장을 다 꺼내오라"고 위협했고, 이어 강간을 시도하다 B양이 소리를 지르며 저항하자 그 자리에서 도주했다.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피해자가 목격했다고 진술한 범인의 인상착의(모자와 마스크 착용, 검은색 상하의, 신장 180㎝, 30∼40대)와 비슷한 피의자를 추적하던 중 범행 시각을 전후해 폐쇄회로(CC)TV 확인을 통해 사건 현장 100m 떨어진 위치에서 비슷한 옷을 입은 A씨를 피의자로 특정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진술한 색상의 옷을 착용하거나 유사한 인상착의를 가진 다른 사람이 CCTV에 촬영된 사실이 없는 점, A씨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아 신뢰하기 어려운 점,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식칼에서 부(父)계로부터 유전되는 성염색체의 유전자좌(Y-STR) 20자위 중 피고인의 것과 동일한 16좌위가 검출된 점 등으로 미뤄 유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2심의 재판부는 달리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는 범인을 명확하게 목격하지 못한 채 옷차림만을 기억해 진술했는데, 피고인의 신장(169㎝)과 나이대와 진술한 범인의 인상착의는 상당한 차이가 있고, 피해자는 경찰이 들려준 3명의 목소리 중 범인의 목소리를 식별하지 못했다"며 피해자 진술만으로 범인이 피고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범행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식칼에 아무런 지문이 검출되지 않았고, STR 유전자 감정결과 아무런 유전자형도 검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STR 유전자 분석법의 경우 개인식별력을 인정하지만, Y-STR 유전자 분석법만으로는 인적 동일성을 식별할 수 없다. 2심 재판부는 "이 같은 감정결과를 갖고 식칼에서 나온 Y-STR 유전자가 피고인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지난 2006년 Y-STR 유전자가 유죄의 증거로 활용하기 어려운 간접 증거에 불과하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바 있다.

2심 재판부는 이외에도 "범행 현장 100m 거리에 있는 CCTV에서는 A씨의 모습이 촬영됐지만, 피해자 주거지로 누군가가 침입한 장면이 없는 등 단순히 범행 시각 무렵 피해자 주거지 뒷골목 방향으로 이동했다는 사정만으로 A씨를 범인으로 추단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