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일만에 땅으로' 김용희씨 "삼성 새 노사문화 정착하길"(종합2보)

공대위 "삼성과 문제 해결에 합의…김씨 명예회복 이뤄져"
심상정 "노동권 차단했던 삼성 담벼락 허무는 계기 될 것으로 기대"
"이 큰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 주신 여러분, 눈물 나게 고맙습니다. 삼성이 이번 투쟁을 통해 새로운 노사문화를 정착시킨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서울 강남역 사거리 25m 높이의 교통 폐쇄회로TV(CCTV) 철탑 위에서 삼성의 사과와 복직 등을 요구하며 농성한 삼성 해고자 김용희(61)씨가 29일 오후 철탑에서 내려왔다.

355일간 이어진 고공농성은 마침내 끝을 맺게 됐다. 김용희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공대위(공대위)는 이날 오후 6시 강남역 2번 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 측과 피해 문제 해결에 합의해 고공농성 투쟁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대위 대표인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지난달 29일부터 한 달간 삼성과의 협상을 벌인 끝에 어제 오후 타결이 됐다"며 "삼성이 고공농성을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하면서 김씨의 명예회복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어 삼성이 보내온 공개사과문을 낭독했다. 삼성은 사과문에서 "김용희님은 해고 이후 노동운동 과정에서 회사와 갈등을 겪었고 그 고통과 아픔이 치유되지 않았다"며 "회사가 그 아픔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하성애 공대위 집행위원장은 "오늘은 해고노동자가 재벌 삼성과 싸워 이긴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날"이라며 "반 평짜리 철탑 위에서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 폐기를 외치며 투쟁한 끝에 이재용 부회장이 무노조 경영 종식 선언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김용희 당원이 투쟁하는 동안 사다리차를 타고 두 번 올라가 만났는데, 가벼운 소슬바람에도 철탑 위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며 아찔했다. 늘 가슴이 욱신거렸는데 폭염이 다시 덮치기 전에 내려오게 돼 기쁘다"고 했다.

심 대표는 이어 "오늘의 승리는 무노조 황제경영으로 노동기본권을 차단했던 삼성의 높은 담벼락을 허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삼성이 사람이 사람답게 일하고 대접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회견이 마친 뒤 김씨는 오후 7시 5분께 소방 사다리차를 타고 내려와 땅을 밟았다.

삼성피해자공동투쟁 깃발을 지팡이 삼아 발걸음을 옮긴 그는 꽃다발을 받아들며 공대위 관계자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김씨는 취재진에게 "철탑 위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스스로와의 싸움이었다.

내가 여기서 떨어지면 가족에게 보상 정도는 해 주겠지 생각했다"며 "나를 살리려고 강남역을 찾고 연대를 해 주신 분들의 눈에 눈물 나게 하지 말자며 버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문제보다도 삼성생명 암보험금과 관련한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 삼성물산 개발과 관련한 과천 철거민 대책위원회에 대해 삼성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게 관심을 많이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1년 만에 땅을 다시 밟은 소감을 묻자 김씨는 "다리 한 번 뻗고 자는 게 사실 일상인데, 제게는 꿈이었다"며 "기쁘고 좋은 날이 왔다"고 했다.

김씨는 119 구급대가 혈압과 맥박을 측정한 결과 정상 수준에서 벗어나 건강이 염려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오늘만큼은 동지들과 함께 반가움을 나누고 싶다"며 당장 병원에 옮겨지는 것은 거부했다.

공대위는 오는 30일 김씨가 건강 검진을 받도록 도울 계획이다.

1982년부터 창원공단 삼성항공(테크윈) 공장에서 일하던 김씨는 경남지역 삼성 노동조합 설립위원장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1995년 5월 말 부당해고 당했다며 삼성을 상대로 사과와 명예복직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해왔다.

24년 넘게 투쟁을 이어오던 김씨는 회사에 계속 다녔다면 정년을 맞았을 지난해 7월 10일을 한 달 앞두고 삼성전자 서초사옥 인근인 강남역 CCTV 철탑 위로 올라갔다. 그는 고공농성을 하는 동안 세 차례 단식 농성을 병행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