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앞두고 中 눈치보는 EU…美·英과 균열

“심각한 우려…단, 제재는 해법 아냐”
미·영 등 4개국 비판공동성명서도 불참
中에 대한 입장 놓고 회원국서도 이견
유럽연합(EU)이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놓고 중국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는 등 신중한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홍콩에 부여한 특별지위를 철폐하는 등 중국에 대한 강경대응을 선언한 미국이나 영국과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홍콩 관련 대중외교를 놓고 미·영과 EU 간 심각한 균열이 노출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지난 29일(현지시간) 27개 회원국 외무장관과의 화상회의가 끝난 뒤 공동성명을 통해 “EU는 중국이 홍콩보안법 처리를 강행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중국의 행동은 국제공약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보렐 대표가 언급한 국제공약은 1984년 영국과 중국이 체결한 홍콩반환협정을 뜻한다. 이 협정은 1997년 중국 반환 이후로도 50년 동안 홍콩 주민의 자치를 인정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 기본정신을 담고 있다. 앞서 중국은 홍콩 시민들과 국제사회의 반발에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전체회의 폐막일인 지난 28일 홍콩보안법 표결을 강행해 통과시켰다.

다만 보렐 대표는 “제재가 중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날 외무장관 회의에서 중국에 대한 제재를 요구한 회원국은 단 한 곳뿐이었다고 덧붙였다. EU 관련 전문매체인 유랙티브닷컴은 EU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이 나라가 스웨덴이라고 전했다.

유랙티브닷컴은 EU가 이날 홍콩보안법 관련 국제사회에 강력한 행동을 공동제안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벗어났다고 분석했다. 오는 9월 독일에서 열릴 예정인 정상회담을 앞두고 EU가 중국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EU와 중국의 경제적 협력관계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EU 입장에서 중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 교역국이다. EU 회원국 내부에서도 중국에 대한 입장은 엇갈린다. 이탈리아 및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은 차이나머니를 앞세운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은 유럽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은 지난 27일 외회에 출석해 “유럽이 미·중 간 충돌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며 “새로운 냉전을 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EU는 앞서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 4개국이 지난 28일 내놓은 공동성명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보렐 대표는 이날 EU가 4개국 공동성명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EU는 나름의 성명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과 계속 대화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오는 9월 EU와 중국 간 정상회담 준비도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U와 미국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각중 무역분쟁을 비롯해 파리기후변화협정, 이란 핵합의 등 각종 현안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홍콩보안법 문제로 미국과 EU의 사이가 또 다시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EU는 올 연말 최종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앞둔 영국과도 대중 외교를 놓고 뚜렷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영국 정부는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적용 계획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영국해외시민여권(BNO)을 소지한 31만여명의 홍콩 주민들에게 영국 시민권을 제공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