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계약 무산에 2천억원 청구한 시공사…법원 "50억만 인정"

조합측의 공사계약 해지 첫 판결 사례…향후 관련 분쟁 영향 줄 듯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시공사와의 공사계약을 적법하지 않게 해지했더라도, 그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은 일부만 인정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4부(홍승면 박지연 김선아 부장판사)는 GS건설 등 건설사 3곳이 서울 방배5구역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조합 측이 50억원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소송을 낸 건설사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2014년 방배5구역 재건축 시공자로 선정됐으나 사업비 대출 등의 문제로 조합과 분쟁을 겪었다.

결국 조합은 2017년 컨소시엄 측에 공사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다른 건설사를 새 시공자로 선정했다. 이에 컨소시엄 측은 일방적인 계약 해지로 손해를 입었다며 조합에 소송을 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대리인으로 세워 애초 계약대로 공사가 이행됐다면 얻을 수 있던 이익 2천여억원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조합 측이 부적법하게 계약을 해지했고, 이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배상해야 할 액수는 50억원으로 제한했다.

컨소시엄 측이 요구한 2천억원은 계약을 체결했을 때의 사업계획을 기준으로 초과 분양금을 계산해 조합과 절반씩 나눈 것인데, 이후 발생한 변수들을 따져 보면 그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사업계획 변경으로 인한 신축 세대수 증가, 국내 경기, 부동산 관련 정부의 정책 변화 등이 주요 변수로 꼽혔다. 재판부는 또 실제 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계약이 해제돼 사업상의 위험이나 비용을 전혀 부담하지 않게 됐다는 점도 고려했다.

조합 측의 잘못으로 계약이 해지되긴 했지만, 그 배경에는 컨소시엄 측이 각종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잘못도 있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단순한 시공사가 아니라 재건축사업의 성공을 위해 사업비 조달부터 분양까지 주요 역할을 수행하는 당사자로서 적극적이고 충실하게 조합에 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조합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시그니처 이언학 변호사는 "이 판결은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시공자와의 공사계약을 해제한 최초의 사례"라며 "향후 조합과 시공자 사이의 공사계약을 둘러싼 분쟁에 적용될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