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조정 빌미 될 수도" vs "이미 맷집 생겨 잘 버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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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져만 가는 美·中 갈등…'기운' 차린 韓증시에 찬물?중국 정부가 홍콩에 적용하려는 ‘국가보안법’을 둘러싸고 미·중이 맞붙으면서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 증시가 기업 실적보다 빨리 반등하면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부담이 커진 만큼 증시 조정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다만 미·중 분쟁이 처음 불거진 2018년 때만큼 증시 충격이 크진 않을 전망이다.
전문가들 엇갈린 시각
"양국 강대강 전면전 가능성
코스피 PER 11배 넘어 부담
미국계 자금이탈 부추길 수도"
미·중 갈등, 증시 조정 빌미 되나지난 29일 투자자들의 이목은 이날 오후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쏠렸다. 전날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국가보안법 초안을 통과시키면서 미국의 대(對)중국 강경책 발표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맹이가 없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평가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 절차 개시, 안보 위협 중국인의 미국 입국 금지, 세계보건기구(WHO)와의 관계 단절 등을 발표했다. 시장을 크게 뒤흔들 수 있었던 미·중 1단계 무역 합의 폐기, 금융 제재는 빠졌다.서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양국이 입으로는 서로를 강하게 비난하지만 실제 행동은 이에 못 미치는 등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며 “시장의 반응도 아직은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내내 하락세였던 미국 증시는 기자회견 이후 상승 반전했다.
갈등이 증폭될 여지는 남아 있다. 김용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초안 수준인 국가보안법이 최종 입법 처리되느냐에 따라 미국과 중국이 강대강 전면전을 펼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는 미국보다 미·중 갈등의 영향을 크게 받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특히 국내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 시가총액/순이익)이 11배를 넘어 고점에 이른 만큼 미·중 갈등이 조정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계 자금의 국내 증시 이탈을 부추겨 수급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중국 주식 여전히 투자 전망 밝다”
미·중 갈등은 국내 중국 펀드 투자자들에게도 근심거리다. 미국이 중국을 이렇게 압박하고 있는데 중국 증시에 투자해도 되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우려에 중국 펀드에선 계속해서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중국 펀드 설정액은 2018년 말 7조6190억원에서 지난 29일 5조9717억원으로 1조6473억원 줄었다.
전문가들은 생각이 다르다. 오히려 중국 증시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중 갈등은 중국이 새로운 패권국으로 떠올랐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장기 투자자라면 포트폴리오에 중국 자산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중국 펀드매니저들도 “미·중 갈등으로 운용이 힘들어진 것은 맞지만 중국 증시 투자 전망은 여전히 밝다”고 입을 모았다. 김대영 KB자산운용 글로벌운용2팀장은 “앞으로 세계를 놀라게 할 글로벌 스타 기업이 나온다면 미국 말고는 중국이 유력 후보지”라며 “미·중 갈등에 중국 기업들의 성장 속도가 다소 느려질 순 있지만 큰 흐름을 바꾸긴 힘들다”고 말했다.중국 경제와 증시가 미·중 갈등에 내성을 기른 점도 중국 증시 전망이 그리 어둡지 않은 이유로 꼽힌다. 고정희 한화자산운용 차이나에쿼티운용팀장은 “2018년 처음 갈등이 빚어졌을 때만 해도 충격이 컸지만 지금은 내성이 생겼다”며 “펀드 포트폴리오도 미·중 갈등의 영향을 덜 받는 종목과 산업으로 바꿔 체감 영향은 크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2018년 24.6% 떨어졌지만 지난해 22.3% 올랐고 올해는 전염병 확산과 미·중 갈등에도 6.5% 하락에 그치고 있다. 고 팀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연기금의 중국 주식 투자를 막겠다고 했지만 중국 증시에서 외국인 비중은 4%가 채 안 돼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통신장비와 반도체 등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종목은 타격이 불가피하겠지만 필수 소비재와 헬스케어, 다른 정보기술(IT) 업종은 미·중 갈등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팀장은 “옛날엔 중국 물건이 싸니까 썼지만 지금은 중국 것이 제일 좋아서 쓰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개별 기업을 보면 중국에 투자 기회가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