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남북 집권세력의 닮은 꼴 '윤미향 비호'

사진=연합뉴스
아니나 다를까 북한이 가만 있지 못하고 숟가락을 올렸다.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사장에 대한 지원사격을 본격화하고 나선 것이다.조국 사태 때도 광화문 네거리에 모인 시민들을 거친 언사로 폄훼하며 ‘조국 사수’에 힘을 보태려던 북한이다. 조국 사태 데자뷔인 윤미향 사태에 끼어드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조국 사태 때 “파면요구는 남한 보수세력의 정치 쿠테타”라고 비난했고,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난동을 방치한다면 또 다시 파쑈독재가 난탕치는 생지옥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했다.소위 보수적폐 프레임이다. 이번에 북이 들고 나온 수법은 너무나도 익숙한 '친일몰이'다. 우리민족끼리는 “부정부패 의혹 문제를 의도적으로 여론화해 진보민주 세력에 대한 민심의 불신과 배척 기운을 고취하려는 친일·적폐 세력의 비열한 음모 책동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패당이 의혹 사건을 반일 세력을 공격하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먹잇감을 만난 승냥이 무리처럼 날뛰고 있다”며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정의를 사칭한 불의와, 그 부정에도 고개를 빳빳이 쳐드는 몰염치에 대한 정당한 분노를 친일파의 발악으로 모는 어이없는 행태다. 이용수 할머니든,그의 용기를 지지하는 국민이든 한 목소리로 ‘올바른 운동’을 주장할 뿐이라는 점에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비난공세다. 일제의 피해자로, 집요하게 만행을 고발하고 저항해 온 이용수 할머니에 친일 딱지를 붙이는 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망각한 것이다.

북의 ‘친일파 타령’은 해방 이후부터 쉼없이 이어지고 있는 고정 레퍼토리로, 날조에 기초하고 있다. 친일 청산이라는 측면에서 낙제점을 받아야 할 나라는 다름 아닌 북한 자신이기 때문이다. 김일성 정권의 초대내각에는 ‘찐 친일파’가 상당수다. 부수상 홍명희는 일제 말 전쟁비용 마련을 위한 임전대책협의회에서 적극 활동한 인물이다. 문화선전성 조일명 부상은 친일단체 대화숙, 보위성 부상 김정제는 양주군수 출신이다. 일제 헌병보조원 출신인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가 당시 서열 2위인 부주석으로 임명되는 등 친일파가 권부 깊숙히 포진했다. 반면 이승만 정부 초기내각은 거의 대부분 항일운동에 헌신한 이들로 채워졌다. 권력서열 1·2위인 대통령과 부통령에 임명된 이승만과 이시영은 각각 상하이 임시정부 대통령과 내무총장을 지냈다. 그외에도 광복군 참모장을 역임한 이범석 국방장관,광복군 총사령관 출신 이청천 무임소장관 등 항일운동가가 즐비하다. 북의 윤미향 비호를 흘려버리기 힘든 것은 비판 논리와 언어가 여권과 소위 ‘진보 진영’의 그것과 판박이여서다. 우리민족끼리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사죄 및 배상을 막으려는 토착왜구들의 모략 날조극"이라고 했다. ‘대깨문’들의 주장과 판박이다. 언제부터인가 닮은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싱크로율 100%’의 주장은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보수언론의 일방적인 매도 탓이라며 걸고 넘어지는 것도 똑 같다. 북한관영 조선중앙통신은 “보수언론이 윤미향을 겨냥해 허위보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극좌 성향의 일부 인터넷 매체를 제외하면 보수 진보 구분없이 대부분 비판적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왜곡이자 편가르기다.

가장 당혹스러운 대목은 북한의 엉터리 주장에 대놓고 동조하는 이가 많다는 점이다. 포털 다음에는 “역시 북한이 정확한 시각으로 보고 있네”“오죽하면 북한이 진실을 말하네” 등의 민망한 댓글이 넘친다. 북한 특유의 억지를 대한민국의 운전대를 잡은 집권세력과 적잖은 국민이 맞장구치는, 너무 낯선 현실이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