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남은 브렉시트 운명…英·EU '치킨게임'에 노딜 파국 맞나

관세 등 무역협상 이견 못 좁혀
이달 말 최고위급 회담에 실낱 기대
시한 연장 못하면 사실상 노딜 브렉시트
노딜시 세계 교역량 타격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운명을 결정짓는 시한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영국과 유럽연합(EU)은 자유무역협정(FTA) 등 미래관계 설정을 위한 전환기간 연장여부에 이달 말까지 합의해야 한다. 양측이 연장에 합의하지 못하면 ‘노딜 브렉시트’(영국의 아무런 합의 없는 EU 탈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이어 노딜 브렉시트까지 현실화되면 세계 경제에 막대한 충격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협상서 이견 못 좁힌 英·EU
영국 정부와 EU는 이달 1일부터 5일까지 화상회의를 통해 4차 미래관계 협상을 진행한다. 협상 연장여부를 결정하는 마감시한인 이달 30일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리는 회의다. 양측은 지난 3월부터 세 차례 협상을 했지만 주요 사안별로 이견이 커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이번 협상에서도 성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영국은 지난 1월31일 EU 집행부 및 산하기구에서 모두 탈퇴했다. 이른바 정치·외교적 브렉시트다. 경제적 브렉시트는 연말 이뤄진다. 영국은 올 12월 31일까지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 잔류한다. 이 때까지가 전환(준비)기간이다. 영국과 EU는 전환기간 동안 영국과 EU는 FTA 등 새로운 미래협정을 맺어야 한다. 전환기간은 양측이 합의하면 한 차례에 한해 최장 2년 연장할 수 있다.


양측이 전환기간 연장에 합의하지 못하면 영국은 올 연말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을 탈퇴하게 된다. 물론 전환기간 연장에 합의하지 못하더라도 올 연말까지 남은 기간 동안 미래협정을 체결하기만 한다면 노딜 브렉시트는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농·어업, 금융 등 다양한 무역현안뿐 아니라 합의해야 하는 안보 관련 사안이 산적해 있다. 올 연말까지 남은 6개월 간 합의를 이뤄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EU는 전환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전환기간 연장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올 연말까지로 예정된 전환기간이 연장된다는 건 브렉시트가 또 다시 연기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유에서다. 양측 협상의 가장 큰 간극은 상품과 서비스의 규제 및 기준이다. EU는 영국이 유럽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선 브렉시트 이후에도 기존 EU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EU에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하려면 EU 규제를 따르라는 뜻이다. 영국 정부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에도 EU 규정을 준수하면 EU 단일시장에 잔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판단에서다.

◆최고위급 회담이 유일한 희망

연말까지 FTA를 타결 짓지 않은 채 영국이 EU 관세동맹에서 탈퇴하면 양측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적용받는다. 영국은 EU산 물품을 수입할 때 WTO 최혜국대우(MFN) 세율을 적용한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영국에 수출할 때 지금은 무관세가 가능하지만 내년 1월부터는 10% 관세가 부과된다. 관세 부담에 따라 교역량이 급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현지 언론들은 영국과 EU가 노딜 브렉시트로 상대방의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양보를 기다리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양측 모두 브렉시트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관철하기 위해 쉽사리 물러서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은 한 발 더 나아가 EU와의 협상도 무조건 이달 안에 끝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달 말 예정된 존슨 총리와 EU 행정부 수반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만남이 노딜 브렉시트라는 파국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꼽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4차 협상에서 돌파구를 찾게 될 것이라고는 어느 쪽도 기대하지 않고 있다”며 “양측 모두 이달 말 열리는 최고위급 회담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될 것으로 예상되는 하반기부터 세계 경제가 반등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노딜 브렉시트가 발생하면 유럽 경제가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사디크 칸 런던시장은 이날 정부에 보낸 공식 서한을 통해 “경제에 더 많은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선 전환기간 연장이 필요하다”며 “정치 이데올로기는 접어둬야 한다”고 밝혔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