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 띄어 앉기·소규모 편성…오케스트라 공연 '뉴노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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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로 달라지는 클래식 무대지난달 1일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아홀에서 열린 베를린필하모닉의 ‘유러피언 콘서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무관중 공연으로 진행된 이 음악회는 베를린필의 온라인 영상 플랫폼인 ‘디지털 콘서트홀’을 통해 생중계됐다. 아르보 페르트와 죄르지 리게티, 새뮤얼 바버의 소품에 이어 말러의 교향곡 4번을 연주할 차례. 이 곡은 원래 4관 편성(목관악기를 네 개씩 배치)으로 약 100명이 연주해야 하는 대작이다.
베를린필 등 유럽·북미 교향악단
지휘자·아티스트 건강 보호 위해
'무대 위 거리두기'로 공연 재개
하지만 이날은 상임 지휘자인 키릴 페트렌코와 함께 단 15명의 연주자가 무대에 올랐다. ‘무대 위 거리두기’를 위해 에르빈 슈타인이 실내 앙상블을 위해 편곡한 버전을 연주곡으로 택했기 때문이다. 현악 주자들은 서로 2m씩 거리를 뒀고, 오보에와 호른 등 관악기를 부는 연주자들은 5m씩 떨어져 앉았다. 4악장에 등장하는 소프라노도 멀찌감치 떨어져 노래를 불렀다. 페트렌코는 이들과 함께 대규모 편성의 말러 못지않은 깊이 있는 연주를 들려줬다. 현지 언론인 타게스슈피겔은 “필하모닉 연주자들은 온전히 자신을 내바쳤고, 그러자 작지만 무한한 세상이 펼쳐졌다”고 호평했다.
코로나19로 무관중 공연 또는 ‘좌석 간 띄어 앉기’ 등 객석만 달라진 게 아니라 오케스트라 무대도 바뀌고 있다. 베를린필 등 유럽과 북미 교향악단들은 아티스트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무대 위 거리두기’로 공연을 재개하고 있다. 독일 오케스트라협회는 지난달 의학전문가에게 자문해 연주자 보호 및 예방 수칙을 준수하며 공연할 수 있는 권고 사항을 발표했다. △현악 섹션을 포함해 1인 1보면대 원칙(일반적으로 2인 1보면대) △연주자 간 1.5~2m 거리 유지(성악가와 관악주자는 더 넓은 간격 유지) △공간 크기에 따라 연주자 수 조정(연주자 1인당 20~30㎥) △소편성 프로그램 2회 이상 연주 등이다.
국내에서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이런 지침을 참고해 지난달 29일 열린 정기 연주회를 ‘무대 위 거리두기’로 처음 열었다.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향 예술감독은 당초 예정된 레퍼토리를 교체해 50명 이내로 줄인 소편성 곡들로 무대를 꾸렸다. 대편성이 필요한 관현악곡인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대신 모차르트의 교향곡 39번을 연주했다. 리허설은 물론 본공연에서도 관악 주자를 제외한 모든 연주자가 마스크를 썼다. 관악 주자 앞에는 투명 방음판을 설치했다. 강은경 서울시향 대표는 “올해 열리는 연주회는 모두 ‘무대 위 거리두기’를 엄격히 적용해 진행할 것”이라며 “레퍼토리도 이에 맞는 곡들로 다시 구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국내 다른 오케스트라들도 한국 클래식계에서 영향력이 큰 서울시향의 이번 조치를 참조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3일 무관중 온라인 생중계로 열리는 ‘내 손안의 콘서트’를 ‘무대 위 거리두기’를 적용해 연다고 2일 발표했다. 프로그램도 대폭 교체했다. 애초 연주하기로 했던 차이코프스키의 ‘만프레드 교향곡’과 김택수의 ‘더부산조’를 빼고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와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을 새롭게 편성했다. 코리안심포니 관계자는 “차이코프스키와 김택수의 곡은 많은 연주자가 필요해 50명 안팎의 단원이 연주할 수 있는 곡으로 프로그램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첼리스트 문태극이 연주하기로 했던 생상스 첼로 협주곡 1번은 소편성이어서 그대로 연주된다.
평론가들은 오케스트라 공연의 이런 흐름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노승림 음악평론가는 “코로나19 사태가 오래간다면 소규모 편성의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고전주의 작품이 자주 무대에 오를 것”이라며 “몇몇 지휘자는 ‘역사주의 연주’ 방식으로 대규모 편성이 요구되는 낭만주의 곡을 들려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역사주의 연주는 작곡가들이 작품을 발표한 당시 공연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을 일컫는다. 바흐의 합창곡을 연주할 때 대규모 합창단을 꾸리지 않고 17세기처럼 성부마다 성악가 한 명씩만 편성하는 식이다. 노 평론가는 “코로나19 백신이 나오기 전까진 관객들이 웅장한 교향악 공연을 보기 힘들겠지만 악기별로 다른 소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