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식스' 이정은의 '해피로드'를 응원하며
입력
수정
'핫식스'이정은(24)을 처음 만난 게 2016년 쯤이었을 것이다. 스윙이 너무 좋아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곧장 "자기쪽으로 와주면 좋겠다"는 말이 매니저를 통해 돌아왔다. "흠, 무척 바쁘신가 보군! 안그래도 가려고 했구만…."
4년이 지난 지금도 '왠지 선수를 뺏긴 듯한' 이 느낌은 정체불명의 감정으로 남아있다. 그는 1시간이 채 안되는 인터뷰 내내 입술만 달싹거리는 듯 했고, 딱히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얼굴엔 누군가에 쫓기는 듯한 초조함까지 비쳤다. 그 불편한 기색을 거스를 수 없어 인터뷰도 서둘러 끝내야 했다.카페 밖으로 나가 작별인사를 나누려던 찰라, 그제서야 그 초조함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장애인용 승합차 운전석에 앉아 기다리던 그의 아버지와 조우한 것이다. 아버지는 인터뷰가 끝나면 이정은을 데리고 스윙코치를 만나러 갈 참이었다. 이정은은 불편한 차 운전석에 갇혀 줄곧 기다리던 아버지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약속장소에 먼저 와 있었던 나는 바깥 사정을 알지 못했다."일찍 가봐야 해서 미안하다"며 목례를 하는 아버지를 본 순간 웃음기 적은 이정은의 삶이 오버랩됐다. '질문 한 두개는 생략해도 됐을 것'이란 자책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러고보면, 인터뷰에서도 그랬다. "가족은 내가 골프를 하는 이유"라고.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게 그를 성공으로 이끌겠구나, 그 지독한 결기가 거꾸로 그를 해치지만 않는다면…."
부녀를 다시 만난 건 1년 쯤 뒤였다. 이정은이 첫 승을 올린 후 열린 한 대회장에서다. 그의 뒤를 많은 팬들이 뒤따랐던 게 가장 큰 변화였다. 환호성을 내지르는 갤러리가 다음 홀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맨 뒤엔 늘 한 명만이 남겨졌다. 아버지였다. 한 팬클럽 회원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타고 있던 그는 100m도 더 떨어진 뒤에서 딸의 경기를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그에게 물었다. "왜 맨 앞에 가서 응원하시지 않고요!"
휠체어를 밀어주던 팬클럽 회원이 대신 말했다. "아이고, 말도 마세요. 나 온 것도 정은이한테 알리지 말라고 난리세요. 나 신경쓰이면 안된다고, 골프는 저 재밌으라고, 저 즐거우라고 쳐야 한다고요."
이 눈물겨운 '원 팀(ONE team)'은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 때부터 나는 거의 모든 경기에서 그의 게임을 지켜보려 했다.이정은은 2018년까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6승을 올렸고 2년 연속 상금왕에 올랐다. 아버지는 늘 이정은보다 100m는 뒤에서 그를 지켜봤다.
"아버지를 두고 갈 수 없다"며 울던 이정은의 등을 떠민 것도 아버지였다. 이정은은 그후 US여자오픈을 제패 메이저챔프가 됐다. 씩씩했던 그는 US오픈 트로피를 꼭 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정은은 2019 LPGA신인상 수락 연설에서 영어 연설을 했다. 3분이 채 안되는 짧은 연설을 위해 그는 꼬박 3개월을 연습했다고 했다. "긴장돼서 죽을 것 같았다"던 연설은 부드러웠고, 흔들리지 않았다. 연설이 끝났을 때, 시상식장의 모든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SNS에는 "LPGA 올해의 스피치다. 아름다운 연설이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또 다른 이는 "영어가 모국어인 이들이 배워야 할 연설"이라고 했다. 집념이 그의 도전을 다시 한 번 해피엔딩으로 이끌었다.
그는 얼마 전 영문 에세이를 LPGA투어 홈페이지에 올렸다. '아직 가지 않은 길(My road less traveled)'. 외로운 결단과 도전으로 가득 찬 그의 삶보다 삶을 바라보는 스물 네살 청년의 처연함이 가슴을 쳤다. 그는 " 쉽고 편한 길은 없다. 가치 있는 길은 늘 그렇다"고 썼다. 그의 미래는 그의 에세이처럼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이다. 골프도 그렇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라질 것이다. 날카로운 결기로 가득찬 자리에 다른 무엇인가가 함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내 대회에 출전한 그가 웃으며 말했다. "골프가 이렇게 재미있는지 미처 몰랐어요."
누구를 위해 골프를 하는가. 이제 그는 새로운 도전 앞에 섰다. 핫식스의 '해피로드', 이제 시작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4년이 지난 지금도 '왠지 선수를 뺏긴 듯한' 이 느낌은 정체불명의 감정으로 남아있다. 그는 1시간이 채 안되는 인터뷰 내내 입술만 달싹거리는 듯 했고, 딱히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얼굴엔 누군가에 쫓기는 듯한 초조함까지 비쳤다. 그 불편한 기색을 거스를 수 없어 인터뷰도 서둘러 끝내야 했다.카페 밖으로 나가 작별인사를 나누려던 찰라, 그제서야 그 초조함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장애인용 승합차 운전석에 앉아 기다리던 그의 아버지와 조우한 것이다. 아버지는 인터뷰가 끝나면 이정은을 데리고 스윙코치를 만나러 갈 참이었다. 이정은은 불편한 차 운전석에 갇혀 줄곧 기다리던 아버지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약속장소에 먼저 와 있었던 나는 바깥 사정을 알지 못했다."일찍 가봐야 해서 미안하다"며 목례를 하는 아버지를 본 순간 웃음기 적은 이정은의 삶이 오버랩됐다. '질문 한 두개는 생략해도 됐을 것'이란 자책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러고보면, 인터뷰에서도 그랬다. "가족은 내가 골프를 하는 이유"라고.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게 그를 성공으로 이끌겠구나, 그 지독한 결기가 거꾸로 그를 해치지만 않는다면…."
부녀를 다시 만난 건 1년 쯤 뒤였다. 이정은이 첫 승을 올린 후 열린 한 대회장에서다. 그의 뒤를 많은 팬들이 뒤따랐던 게 가장 큰 변화였다. 환호성을 내지르는 갤러리가 다음 홀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맨 뒤엔 늘 한 명만이 남겨졌다. 아버지였다. 한 팬클럽 회원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타고 있던 그는 100m도 더 떨어진 뒤에서 딸의 경기를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그에게 물었다. "왜 맨 앞에 가서 응원하시지 않고요!"
휠체어를 밀어주던 팬클럽 회원이 대신 말했다. "아이고, 말도 마세요. 나 온 것도 정은이한테 알리지 말라고 난리세요. 나 신경쓰이면 안된다고, 골프는 저 재밌으라고, 저 즐거우라고 쳐야 한다고요."
이 눈물겨운 '원 팀(ONE team)'은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 때부터 나는 거의 모든 경기에서 그의 게임을 지켜보려 했다.이정은은 2018년까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6승을 올렸고 2년 연속 상금왕에 올랐다. 아버지는 늘 이정은보다 100m는 뒤에서 그를 지켜봤다.
"아버지를 두고 갈 수 없다"며 울던 이정은의 등을 떠민 것도 아버지였다. 이정은은 그후 US여자오픈을 제패 메이저챔프가 됐다. 씩씩했던 그는 US오픈 트로피를 꼭 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정은은 2019 LPGA신인상 수락 연설에서 영어 연설을 했다. 3분이 채 안되는 짧은 연설을 위해 그는 꼬박 3개월을 연습했다고 했다. "긴장돼서 죽을 것 같았다"던 연설은 부드러웠고, 흔들리지 않았다. 연설이 끝났을 때, 시상식장의 모든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SNS에는 "LPGA 올해의 스피치다. 아름다운 연설이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또 다른 이는 "영어가 모국어인 이들이 배워야 할 연설"이라고 했다. 집념이 그의 도전을 다시 한 번 해피엔딩으로 이끌었다.
그는 얼마 전 영문 에세이를 LPGA투어 홈페이지에 올렸다. '아직 가지 않은 길(My road less traveled)'. 외로운 결단과 도전으로 가득 찬 그의 삶보다 삶을 바라보는 스물 네살 청년의 처연함이 가슴을 쳤다. 그는 " 쉽고 편한 길은 없다. 가치 있는 길은 늘 그렇다"고 썼다. 그의 미래는 그의 에세이처럼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이다. 골프도 그렇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라질 것이다. 날카로운 결기로 가득찬 자리에 다른 무엇인가가 함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내 대회에 출전한 그가 웃으며 말했다. "골프가 이렇게 재미있는지 미처 몰랐어요."
누구를 위해 골프를 하는가. 이제 그는 새로운 도전 앞에 섰다. 핫식스의 '해피로드', 이제 시작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