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경 손들어준 文…감염병硏 남겨 질병관리청 위상 강화할 듯

질본 廳 승격에도 인력·예산 줄어
"복지부 배만 불리는 개편" 지적
'조직개편 비판' 청원에 3만명 동의
복지부 2차관 신설도 논란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독립·승격시키는 과정에서 조직과 인력은 오히려 줄어든다는 우려가 나오자 “(정부조직법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질병관리본부 소속 국립보건연구원과 감염병연구센터가 확대 개편되는 감염병연구소를 보건복지부 산하로 이관하는 방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4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방역일선에서 총괄하는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시키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현재 질병관리본부 산하에 있는 국립보건연구원과 감염병연구센터를 합쳐 설립하는 감염병연구소를 복지부에 남겨두기로 하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현재의 복지부-질병관리본부(국립보건연구원·감염병연구센터) 구조를 복지부-감염병연구소, 질병관리청으로 분리하면서 오히려 질병관리청의 인력과 예산이 축소된다는 지적이 나왔다.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질병관리본부의 감염병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취지에 맞게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정책적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행정안전부가 3일 입법예고한 정부조직 개편안엔 크게 세 가지 내용이 담겼다. 우선 질본을 복지부에서 독립된 ‘청’으로 승격하는 내용이다. 질본이 청이 되면 예산·인사·조직 관련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질본의 위상을 강화할 필요성이 컸기에 환영받았다.

문제가 된 내용은 두 가지다. 우선 질본 산하 연구조직인 국립보건연구원과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을 복지부로 남기기로 한 안이다. 특히 국립보건연구원은 감염병연구센터와 합쳐 국립감염병연구소로 확대 개편한 뒤 복지부로 이관한다는 게 정부 안이었다. 이렇게 되면 질본에선 160명의 인력과 1500억원의 예산이 줄어든다. 반대로 복지부 조직은 그만큼 커진다.임인택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이에 대해 “질본의 기능은 감염병 방역 업무이고, 국립보건연구원은 보건의료 전반의 연구를 담당하기 때문에 질본으로부터 독립해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법이 정한 질본 업무 영역엔 감염병뿐 아니라 만성질환, 희귀난치질환 등 질병 전반이 포함된다”며 “질본 기능을 감염병 분야로 축소시키려는 의도로밖에 안 보인다”고 꼬집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도 “최소한 감염병 분야 연구 기능은 질본 안에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에 2차관을 신설한다는 내용도 논란이 일었다. 복지부 업무는 크게 ‘사회복지’와 ‘보건의료’로 나뉘는데, 차관이 한 명밖에 없으니 보건의료를 전담하는 차관을 새로 두겠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2차관 자리가 생기면 그 아래 여러 국과 과가 신설되고 인력·예산도 커진다.

시점도 문제다. 방지환 보라매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최근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는 등 아직 방역이 안정되지도 않았는데 조직 확대부터 얘기하는 건 순서가 틀렸다”고 주장했다. 김우주 교수도 “질본 주요 간부 자리는 행정고시 공무원들이 꿰차고 있어 전문성이 떨어지고 감염병 대응에서도 다른 부처의 간섭으로 제 목소리를 못 낸다는 지적이 많다”며 “이런 부분을 개선할 생각부터 해야지 토목공학적으로 조직만 확대하려 하니 안타깝다”고 지적했다.문 대통령이 “확대 개편되는 감염병연구소를 복지부로 이관하는 방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한 만큼 감영병연구소 이관은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감염병연구소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그대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질본 안팎의 관측이다. 그러나 복지부 2차관 신설은 문 대통령 공약이었던 만큼 추가 검토 후 그대로 추진할 공산이 크다는 예상이 나온다.

다만 이 과정에서 당초 정부안의 긍정적인 부분까지 없애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시영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는 “정부 조직 개편과 상관없이 국립보건연구원이 보건의료 전반의 연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역할과 예산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방향은 맞다”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수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민준/강영연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