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타 무용수에서 솔리스트로 우뚝…발레리나 강호현

파리오페라발레단 정단원…이달 27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라

2018년 7월 초. 발레리나 강호현(24)은 파리오페라발레단 승급 심사에 참여했다. 준단원에서 정단원으로 갈 수 있는 시험대였다.

한 달 넘는 심사 준비에 이미 녹초가 돼 있었다.

경쟁자들이 많아 연습실을 쓰려면 새벽 4~5시에 출근해야 했다. 발레 공연 연습도 병행했기에 잠잘 시간이 거의 없었다.

결전의 날, 강호현은 '돈키호테' 2막에 나오는 돈키호테의 꿈 장면에서 둘시네아의 솔로 부분을 췄다.

그러자 꿈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여명의 무용수 중 1등을 차지한 것이다.

"정단원이 되는 건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1등은 생애 처음이라 기쁘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프랑스에 온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는데, '동료들이 저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구나'라는 생각에 흐뭇했습니다.

"
최근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난 강호현은 2년 전 정단원이 된 순간이 "살면서 가장 기뻤다.

운이 좋았다"면서 이렇게 회고했다.

강호현이 입단한 파리오페라발레단은 1671년에 설립된 세계 최고(最古) 발레단이다.

영국 로열발레단,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 등과 함께 세계 최정상급 발레단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한국인으로는 발레리노 김용걸(2009년 퇴단)과 발레리나 박세은·윤서후가 단원으로 뽑힌 바 있다.
처음부터 해외로 진출하려 했던 건 아니다.

예원학교-서울예고-한예종이라는 정통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그는 한때 국립발레단 입단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발레단은 레퍼토리가 해외발레단에 견줘 부족했다.

"춤을 출수록 춤을 더 배우고 싶었던" 그는 풍부한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무대에서 관객들과 더 많이 만날 기회가 있는 해외 발레단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대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친구와 함께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지원했다가 "운 좋게" 선택됐다.

2017년 10월 무렵부터 시작한 준단원 생활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군무에 들어갈 경력도 안 됐던 그는 무대 밖에서 대기하다가 군무 무용수가 갑자기 다치면 급하게 무대에 투입됐다.

통상 이런 준단원 생활을 3~4년 정도 하는 게 관례였는데, 강호현은 1년 만에 정단원으로 승급했다.

정단원이 된 지 2년 만에 이제는 한국 무대에서 실력을 선보일 기회를 얻었다.

그는 오는 27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대한민국발레축제 '해외무용스타 스페셜 갈라' 무대에 오른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한성우와 호흡을 맞춰 돈키호테 파드되(2인무)를 춘다.

"사람마다 작품을 대하는 시선과 해석이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파트너로부터 배울 게 참 많아요.

한성우 선배님과는 처음 파트너가 됐는데, 이번 무대는 개인적으로 정말 기대하고 있어요.

"
그는 정단원이 된 후 "운 좋게도" 솔리스트로 수차례 무대에 섰다.

한창 발레가 재미있을 때, 감염병 사태가 터졌다.

극장은 폐쇄됐고, 그는 지난 3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난 석 달 간 가족과 지내면서 오랜만에 밥도 함께 먹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늦게까지 연습을 해 가족 전원이 모여 식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정말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밥 먹을 시간을 가져서 요즘 행복하다"고 했다.

가족은 그에게 늘 버팀목이었다.

부유한 편이 아니었지만, 부모님은 늘 그의 선택을 지지해 줬다.

다소 늦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발레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 프랑스로 취업한 것과 같이 자신의 미래와 관련한 중요한 결정들은 모두 본인이 직접 했다고 한다.

"저는 항상 우수하기만 했던 학생도 아니었고, 경쟁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소심한 아이였어요.

하지만 늘 저의 선택을 지지해주시는 부모님 덕분에 남들과 저를 비교해 본 적이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오로지 저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발레든 뭐든 그 어떤 것보다도 가족이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해요.

아마 그다음이 발레쯤 될 거예요.

"(웃음)
강호현은 꿈을 묻자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게 목표"라고 했다.

"어떤 위치에 가고 싶기보다는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싶다.

이 정도 했으면 최선을 다했다"는 마음이 들 정도까지는 발레를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즐겁게 춤추는 거예요.

저에 대한 타인의 평가, 돈을 버는 것, 그런 건 현재까지 제게 별로 중요한 가치가 아니에요.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춤추는 게 아니니까요.

중요한 건 춤출 때 행복하냐, 그렇지 않으냐예요.

재미가 없으면 미련 없이 파리오페라발레단도 떠날 겁니다.

그래도 현재까진 파리에서 발레를 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무엇보다 배울 게 많아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