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섬' 남해 여행길에 꼭 안고 가고 싶은 詩篇

리뷰 - '남해, 바다를 걷다'
고두현 시인의 테마 시선집
고두현 시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의 창작 무대인 경남 남해 물미해안도로. 물건리에서 미조항까지 30리 길을 드론 카메라로 찍었다. 남해군 제공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고두현 시인의 시 중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대표작 ‘늦게 온 소포’의 한 구절이다. 눈 내리는 겨울밤 도착한 어머니의 소포엔 노란 남해산 유자 아홉 개가 담겨 있다. 그 껍질 속 향기는 편지에도 가득 배어 있다.
고 시인의 작품 중에서 남해를 테마로 한 시들을 선별해 엮은 시선집 《남해, 바다를 걷다》(민음사)가 출간됐다. 경남 남해 태생인 시인은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남해 가는 길-유배시첩’이 당선돼 등단한 이래 27년간 남해를 모티프로 한 시를 써왔다.

이번 시선집은 남해에 매료된 독자들의 요청으로 탄생했다. 물결 낮은 은점마을, 다랭이마을, 물미해안 등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시 67편은 마치 남해가 읊는 시를 시인이 받아 적은 듯한 착각에 들게 한다. 코로나 사태로 해외여행이 막힌 요즘, 남도 여행에 동반하면 좋은 ‘길 위의 친구’ 같은 시집이다. 샛노란 유자와 은빛 물결로 반짝이는 표지를 열면 남해의 풍경 사진들이 먼저 나온다. 상주은모래비치, 가천다랭이마을, 이국적인 독일마을의 밤과 낮, 문학의 섬인 남해 노도, 굽이치는 물미해안도로 등 절경 사진을 보면 상쾌한 남해의 공기가 절로 느껴진다.시인이 가장 먼저 노래한 것은 남해 바다다.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에서는 ‘해안선이 돌아앉아 머리 풀고/ 흰 목덜미 말리는 동안/ 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같은 남해 물미해안의 바다 단풍을 노래한다. ‘바래길 연가’ 시리즈에선 남해의 대표 길인 ‘바래길’ 주변의 오묘한 자연 변화를 섬세하게 담아낸다. 숲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물건방조어부림과 몽돌밭 자갈 소리, 잘브락대는 파도 소리, 숲을 흔드는 풍경 소리….

‘남해 시’ 한쪽을 차지하는 감정은 ‘그리움’이다. ‘남녘 장마 진다 소리에/ 습관처럼 안부 전화 누르다가/ 아 이젠 안 계시지……’라는 짧은 시 ‘한여름’에서 시인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안부를 무심결에 물으며, 지난 시간을 그리워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 남해 노도를 배경으로 한 ‘유배시첩’ 시리즈도 참 좋다. 그는 ‘시인의 말’에 “남해는 내 고향이자 문학적 모성의 원천”이라며 “등단작을 포함해 수많은 작품이 이곳에서 탄생했다는 점에서 남해는 시의 섬이자 그리움의 섬”이라고 썼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