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국책은행 '임금피크제' 논의…명퇴자 5년간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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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관련 논의 무기한 연기국책은행의 임금피크제 문제가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명예퇴직 제도 개선 논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둔 직원들의 불만이 급증하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체 재원으로 명퇴제도 활성화해야"
9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IBK기업은행·KDB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등 3개 국책은행과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는 5월 열릴 예정이었던 세 번째 회의를 취소하고 무기한 연기했다. 코로나19 사태 속 명예퇴직 개선 논의가 부적절하다는 판단에서다.이들은 지난해 11월 상견례를 했다. 각 은행의 최고 책임자와 노조위원장, 금융위 및 기재부 국장급 이상 책임자 등이 참석했다. 3개월에 한번 만나 관련 내용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2월 진행된 두 번째 회의는 긍정적인 분위기였다는 게 참석자의 설명이다. 이들은 향후 논의 방향과 계획을 공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뜻을 모았다.
◆"노동력 저하시키는 임금피크제"
임금피크제는 기존 55세 정년이 2016년 60세로 연장되면서 늘어나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모든 공공기관에 도입된 임금 제도를 말한다.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노사가 합의한 연령이 되면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다. 56세(만 55세)가 된 직원은 기존 임금의 90~100% 수준의 임금을 받다가 이후 매년 줄어든 임금을 받는다. 산업은행의 경우 56세에 기존 임금의 90%를 받은 후 57세 75%, 58세 50%, 59세 40%, 60세 35%의 임금을 받게 된다.문제는 임금피크제 대상이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하면서 전체 노동력이 크게 저하됐다는 점이다. 기업은행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임직원은 1만3507명으로 임금피크제 대상은 2016년 59명에서 지난해 510명으로 9배 넘게 늘어났다. 기업은행 측은 임금피크제 대상자가 2022년 1018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년 뒤 전체 임직원의 10%가 임금피크제 대상자가 된다는 의미다.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은 핵심 업무가 아닌 한직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전체 노동력 저하로 직결된다. 특히 국책은행의 경우 정부로부터 전체 임직원수를 제한받기 때문에 새로운 직원을 뽑을 수도 없다. 노조가 임금피크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명예퇴직 개선을 요구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실효성 없는 명예퇴직, 본격적인 개선 논의
문제 해결 방안으로는 명예퇴직 제도 개선이 꼽힌다. 임금피크제 대상자에 대한 명예퇴직이 실시될 경우 새로운 직원을 충원해 조직의 실질적 노동력을 올릴 수 있다. 임금피크제 대상자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젊은 나이에 퇴직해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다.
현재 국책은행 명예퇴직 제도는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는 1998년 현재의 공공기관 명예퇴직금 산정 규정을 만들었는데 임금피크제 대상자만이 명예퇴직을 신청할 수 있다. 규정에 따르면 정년이 4년 남은 연봉 1억원의 56세 직원이 명예퇴직을 신청할 경우 총 9000만원을 퇴직금으로 받을 수 있다. 현행 퇴직금은 연봉의 45%에 정년의 절반을 곱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면 남은 기간 총 2억원 정도를 임금으로 받을 수 있다. 연봉의 200%를 남은 정년에 나눠받게 돼서다. 퇴직금이 전체 임금보다 적기 때문에 최근 5년간 국책은행 명예퇴직자는 한 명도 없었다.
◆ 형평성에 재정 문제까지…'채권·펀드' 조성 목소리도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모르진 않는다. 다만 모든 공공기관에 일괄되게 적용되는 퇴직금 산정 규정을 국책은행에만 다르게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국책은행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은 "직원 동의 없는 임금피크제 적용은 무효"라며 임금 삭감분에 대한 반환 소송을 내기도 했다. 산업은행 시니어노조 조합원이 소송을 냈고 기업은행도 결과에 따라 소송을 낼 계획이다.
내부에서는 관련 논의가 중단된 만큼 자체 재원을 마련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잉여 이익금의 일부를 퇴직금 재원으로 마련해 명예퇴직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국책은행 관계자는 "이조차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면서도 "퇴직금 명목의 채권이나 펀드를 조성해 인건비 감소분을 상환하는 방식도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윤진우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