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혜의 뷰티톡] 로열티가 사라진 시대, 공식은 깨졌다

'가히' '브링그린' '라카' 등
신규 브랜드에도 쉽게 도전
유명인 협업은 선택 아닌 필수
화장품은 여성들의 필수품입니다. 요새는 피부관리에 신경을 쓰는 남성들도 늘었죠. 점점 많은 기업들이 화장품 시장에 뛰어드는 것도 '여전히 성장하는 산업'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신규 화장품 브랜드들이 끊임없이 시장에 나오고 있습니다. 신기한 건 들어보지 못한 신생 브랜드인데도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들은 브랜드 로열티(충성도)나 편견 없이 제품을 과감하게 선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신생 브랜드들이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케팅으로만 입소문을 내면서 저비용 고효율 구조로 운영하는 것도 타깃 소비자인 MZ들만 반응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기 때문이죠.
대표적 예가 '가히'라는 브랜드입니다. 저는 처음 들어봤습니다만, '리파 캐럿' 등 뷰티 디바이스를 만들던 코리아테크가 내놓은 신생 브랜드라고 합니다. 가히가 최근 출시한 '링클 바운스 멀티밤'은 일명 '김고운 멀티밤'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출시 2주 만에 '완판'됐습니다. 물론 배우 김고은 씨가 출연 중인 드라마 '더킹:영원의 군주'에서 사용하는 장면이 등장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지만, 뷰티 인플루언서와 SNS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노출됐던 제품이기도 합니다. 보습에 신경써야 할 시기에 여러 신체 부위에 써도 되는 멀티밤을 내놓은 것도 주효했죠.

사람들은 인스타그램 등에서 '김고은 멀티밤'이라고 광고하는 것을 여러 차례 보면서도 '가히'라는 브랜드는 잘 모르고 구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소비자와 소통하고 제품의 특장점을 강조하느냐가 브랜드 충성도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년에 인스타그램에서 '핫'했던 색조 브랜드 '라카'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뉴트럴 계열의 색조 화장품으로 마케팅하기 위해 SNS에서 화제가 될 만한 이벤트를 기획했었죠. 새끼 손가락보다 작은 크기의 립 제샘플을 아주 작은 택배박스에 포장해 보내면서 노출이 많이 됐고, 제품을 써본 사람들이 다른 색상도 구입하는 등 매출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잘 모르는 브랜드지만, 재미있어보이거나 제품이 좋아보이면 과감하게 도전하는 소비자들이 그만큼 많아진 겁니다.물론 유명 뷰티 인플루언서의 역할도 큽니다. 신생 브랜드지만 갑자기 잘 팔리는 사례가 있어 찾아보면 어김없이 뷰튜버(뷰티 유튜버)가 추천하거나 협찬을 받아 홍보한 제품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달 '브링그린'이 뷰티 인플루언서 '채소'와 협업해 올리브영에서 출시한 '티트리시카 수딩 토너'가 판매 두 시간여 만에 품절된 것도 이를 잘 보여줍니다. '내가 좋아하는 인플루언서'나 '연예인'이 추천하는 제품이라면 브랜드가 뭐든 일단 구입하는 소비 방식이 요즘 트렌드라는 건 분명해보입니다. 비싼 돈을 주고 인플루언서와 손을 잡는 이유이기도 하겠죠.
생각해보면 이런 트렌드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10년 전만 해도 백화점 브랜드를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자주 사야 하는 화장품은 중저가 로드숍에서 구입하되 자주 꺼내들게 되는 거울 달린 쿠션이나 립스틱 같은 건 비싼 브랜드 제품을 사고 싶어했죠. 화장품 자체를 사치재로 인식하는 소비자들이 많았던 겁니다.

하지만 K뷰티라는 이름을 달고 국내 브랜드들이 해외서 승승장구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습니다. '듣보잡'이라고 생각했던 브랜드도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급성장하는 경우가 생겼죠.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개인 사업자, 신규 사업을 고심하던 대기업이나 중소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었습니다.한 3~4년 전부터는 인스타그래머나 유튜버들이 화장품 제조업체와 같이 기획해서 내놓는 화장품이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서 몇 만 개씩 팔리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역시 저비용 고효율 방식입니다. 재고를 두지 않고 선주문을 받은 뒤 제조를 시작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파급력이 있는 인스타그래머들까지 뛰어드는 판국이니 그야말로 무한경쟁 시대입니다.

실적은 저조하지만 여전히 국내 화장품 1위 기업인 아모레퍼시픽그룹이 고전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런 신생 브랜드들이 MZ세대를 끌어간다는 데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도 젊은 층을 겨냥하기 위해 신규 브랜드를 여럿 내놨지만 기존 유통망을 고집하는 이상 잘 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아주 옛날,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 아줌마', '주단학 아줌마'들이 화장품을 이고 지고 집집마다 다니며 현란한 얼굴 마사지 기술을 선보이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세대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한 거죠. 그 당시엔 "난 태평양 화장품만 써", "난 주단학이 좋더라"라고 특정 브랜드에 로열티를 갖던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말입니다. 로열티가 사라진 시대, '백화점 브랜드'라고 다 잘 된다는 공식은 이미 깨졌습니다. '올리브영 입점'을 목표로 하는 브랜드가 요즘엔 잘 없다고 합니다. 수만 개의 브랜드가 무한경쟁을 하는 요즘 시대, 과연 어떤 브랜드가 앞으로 뜨고 또 질지 저도 궁금해집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