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은 오늘부터 적이다"…北, 모든 남북 연락채널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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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핫라인·軍 통신선 모두 차단북한이 9일 남북한 사이의 모든 통신 채널을 끊는 초강수를 뒀다. 한동안 단절됐던 판문점 채널이 2018년 1월 3일 복원된 뒤 2년5개월여 만이다. 북한의 이번 조치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4일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남북관계 파탄을 언급한 후 닷새 만에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남북관계가 다시 대립과 반목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2018년 판문점채널 복구 이후
2년5개월 만에 '불통시대' 회귀
연락 채널 모두 ‘먹통’조선중앙통신은 9일 오전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 연락선들을 완전 차단해버리는 조치를 취함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6월 9일 정오부터 북남 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유지해 오던 북남 당국 사이의 통신연락선, 북남 군부 사이의 동서해통신연락선, 북남통신시험연락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와 청와대 사이의 직통통신 연락선을 완전 차단·폐기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이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 및 함정 간 국제상선공통망(핫라인), 판문점 채널 등 남북 간 연락채널은 모두 먹통이 됐다. 또 청와대와 북한 국무위원회를 연결하는 핫라인도 제대로 사용해보지 못한 채 설치 2년 만에 끊겼다.북한은 과거에도 남북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 남북한 사이의 연락채널을 끊는 조치를 취해왔다. 북한은 1976년 ‘판문점 도끼사건’ 때 일방적으로 직통전화를 끊었고, 1991년 3차 핵실험에 대응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제재에 나서고 한미합동군사연습이 진행됐을 때도 연락 채널을 끊었다. 박근혜 정부가 2016년 개성공단 운영을 전면 중단했을 때도 북한은 판문점 연락채널과 군 통신선 차단으로 대응했다.
‘대남총괄’ 위상 다지는 김여정
이번 통신단절 조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동생인 김여정 주도로 이뤄졌다. 대남사업 총괄 업무를 맡게 된 김여정의 북한 내 위상이 공고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여정은 지난 4일 담화문을 통해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며 남북관계 파탄을 경고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여정의 담화에는 김정은의 의중이 반영돼 있다”며 “과거에 비하면 일사불란하게 연락채널이 차단됐다”고 말했다.북한은 이번 조치의 주체로 김여정을 명시하기도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여정과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회의에서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며 “우선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 연락선들을 완전히 차단해버리는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북한은 김여정이 대남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었다. 통전부 대변인은 지난 5일 김여정을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제1부부장”이라며 “김여정 제1부부장이 대남사업 부문에서 담화문에 지적한 내용을 실무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검토사업을 착수하는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꽃게철’ 서해 우발적 충돌 우려북한이 대북전단 살포의 첫 대응 조치로 공언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를 넘어 모든 소통채널의 차단 수순을 밟음에 따라 남북관계는 당분간 얼어붙을 전망이다. 관련 보도를 대남 매체나 대외선전용 매체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에도 실은 것은 그만큼 단순한 ‘협박’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4월 통전부장에서 물러난 북한의 대남 ‘강경파’ 김영철이 대남 사업 전면에 재등장한 점도 군사 도발의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그는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향후 취할 수 있는 조치로는 지난달 3일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처럼 접경 지역 일대의 국지적 도발이 예상된다.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과 함정 통신망 단절로 남북 양측 간 우발적인 군사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김동엽 경남대 교수는 “북한이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그냥 말로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이 크다”며 “무엇보다 군사분계선이 명확한 육상 공중이 아니라 6월이 꽃게철이라는 점에서 서해 해상에서 북한의 어떤 조치가 나올지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락근/이정호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