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자산가들, 해외 CB 투자에 꽂혔다

인텔·테슬라·에어버스 등
우량기업 CB 안정적 수익
글로벌 자산 배분 효과도
대기업 임원 은퇴 후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는 60대 후반 남성 A씨는 지난해 삼성증권을 통해 달러 채권에 투자하면서 10억원 정도를 아메리카 모빌 전환사채(CB)에 넣었다. 멕시코 유·무선 통신시장 점유율 60%인 1위 업체다. 뉴욕증시에 주식예탁증서(DR)가 상장돼 있다. 재무 구조가 우량해 원금 손실 위험이 적은 데다 채권 매매 차익은 비과세인 점에 솔깃했다. A씨는 최근 이 CB를 상환받아 연 3.3%의 수익을 거뒀다.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 해외 CB 투자가 인기를 끌고 있다. 달러 표시 채권이라 글로벌 자산 배분 효과를 거둘 수 있고, 비과세로 금융소득종합과세 부담도 작기 때문이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최소 투자 금액이 2억원 수준이지만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 해외 CB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기대 수익률만 놓고 보면 국내 상장사가 발행한 CB가 높다. 하지만 해외 CB는 인텔, 테슬라, 에어버스, 소니, 지멘스, 아식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트위터, 웨이보 등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기업도 발행해 투자 위험이 낮은 게 장점이다. 해외 CB 시장은 약 350조원 규모로 대형주가 40%, 중대형주가 30%를 차지한다. 반면 국내 CB는 대형주 비중이 1%에 불과하다.

김경식 플레인바닐라투자자문 대표는 “국내 CB는 중소형 상장사가 발행하다 보니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이 높고 중간에 사고팔기도 어렵다”며 “해외 CB는 유명 기업도 많이 발행하고 거래도 활발해 안전한 투자를 원하는 고액 자산가들에게 좋은 투자 대상”이라고 말했다.

해외 CB는 ‘밑이 막히고, 위가 열린’ 구조다. 전환 가격보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전환해 차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채권 매매만으로도 충분한 매력이 있다는 분석이다. 채권 매매 차익 비과세 때문이다.해외 CB 가격이 올라 2만달러의 매매 차익을 거뒀다면 투자자는 세금을 내지 않고 이를 다 가져갈 수 있다. 반면 펀드로 해외 CB에 투자한다고 치면 15.4% 원천징수에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면 46.2%(최고세율 기준)를 더 떼 1만760달러로 수익이 줄어든다. 국내 사모 CB 펀드 역시 마찬가지다.

김 대표는 “해외 CB는 표면금리가 낮아 주로 매매 차익을 노리고 투자하는 상품”이라며 “우량 해외 CB를 가격이 하락했을 때 매수하는 식으로 연 8~10%대 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