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간섭에 홍콩 경제자유 잃어"…글로벌 기업들, 싱가포르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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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식 법률' 홍콩에 투자했지만미국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이 매년 3월 발표하는 경제자유지수에서 올해 이변이 발생했다. 1995년 집계 시작 이후 작년까지 25년 연속 1위를 유지하던 홍콩이 2위로 밀리고, ‘만년 2위’이던 싱가포르가 1위로 올라섰다.
보안법 통과로 대거 이전 고려
싱가포르, 올해 첫 경제자유 1위
새로운 아시아 금융허브 부상
싱가포르의 종합점수는 작년과 같은 89.4점이었다. 90.2점이던 홍콩이 89.1점으로 내려가면서 선두 자리를 내줬다. 홍콩은 주요 항목 중 지난해 90점이던 ‘투자 자유도’가 80점으로 떨어졌다. 헤리티지재단은 “홍콩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간섭과 통제가 커지면서 경제 자유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홍콩 보안법, 사업 환경에 악영향”
홍콩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확산되면서 홍콩이 ‘아시아 금융허브’ 지위를 싱가포르에 내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해 계속된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한 반작용으로 중국이 지난달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강행하면서 충돌이 더 격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 절차를 시작한다”고 보복 의사를 밝혔다. ‘엄포’로 그칠 수도 있지만, 그동안 홍콩에 부여해 온 무역·관세·투자·비자 발급상 특혜를 없애고 중국 다른 도시들과 같이 취급하겠다는 압박이다.
이 조치가 현실화하면 상당수 기업이 홍콩을 떠날 것으로 조사됐다. 주홍콩 미국상공회의소가 이달 초 180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30%가 홍콩 보안법으로 인해 홍콩 이외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후보지로는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등이 거론됐다.로이터통신은 상당수 글로벌 기업이 홍콩에서 운영하는 아시아지역 금융·재무 기능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홍콩의 한 은행 관계자는 “아시아에서 체인점 수백 개를 운영하는 미국 유통업체가 싱가포르로 재무 부서를 이동시키기 시작했다”고 했다. 미국 외환중개업체 OANDA의 제프리 해일리 시장분석가는 “중국식 법률이 시행되면 홍콩의 서구식 사법제도를 기대하고 들어온 기업들은 비슷한 환경의 싱가포르로 대거 이동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대기업 대거 유치한 싱가포르
싱가포르와 홍콩은 세계 30위 안팎의 국내총생산(GDP), GDP와 맞먹는 외환보유액 등 다양한 경제지표에서 경쟁하고 있다. 영어 사용이 자유롭고 교육·의료·치안 수준이 높으며 안정된 경제·사법 체계를 갖춘 덕분에 많은 글로벌 기업이 아시아 거점을 두 도시에 두고 있다. KPMG에 따르면 아시아에 지역본부를 둔 글로벌 기업 중 46%가 싱가포르를, 37%가 홍콩을 선택했다.싱가포르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지리적 강점을 활용해 물류허브로 성장했다. 지난해 싱가포르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3660만TEU(1TEU=20피트 컨테이너 한 개)로 상하이(4201만TEU)에 이어 세계 2위다.
싱가포르 선물거래소는 미국 뉴욕, 영국 런던과 함께 원유 등 국제 상품 선물 거래의 3대 축으로 꼽힌다. 지리적으로는 인도와 가깝고, 인구의 17%가량이 무슬림이라는 점에서 인도·이슬람 자금을 유치하기에도 유리하다. 홍콩을 대체할 금융허브 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중국 대기업이 받쳐주는 홍콩
금융허브로서의 지위를 보여주는 증권거래소 시가총액에선 홍콩이 여전히 앞서고 있다. 홍콩증시에 상장된 기업의 시총 합계는 지난 4월 말 기준 3조9577억달러로 싱가포르(6972억달러)의 다섯 배를 넘는다.
홍콩증시에는 시총 2조달러인 중국 공상은행을 비롯해 1000억달러 이상 기업이 80여 개에 이른다. 싱가포르증시 최대 기업은 시총 500억달러 안팎인 전력기업 하이플럭스와 싱가포르개발은행(DBS) 두 곳이다. 이는 중국이 1997년 영국에서 반환받은 홍콩에 국유기업을 대거 상장시키면서 글로벌 자금을 조달하는 창구로 적극 활용한 덕분이기도 하다. 중국 국유기업을 뜻하는 ‘레드칩’ 173곳부터 민간 인터넷기업 텐센트까지 1200여 개 중국 기업이 홍콩증시에 상장돼 있다.중국의 지원 아래 홍콩이 금융허브 지위를 당분간 이어갈 것이란 반론도 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