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상법 개정…巨與 믿고 강행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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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법무부 입법예고정부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등을 담은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과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이 포함된 상법 개정안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경제계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이유로 반대해 온 법안들이지만 4월 총선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를 배경으로 재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경제계는 두 가지 법률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기업들을 짓누를 것이라는 우려를 내놨다.
경제계 '기업위축' 이유 반대한
전속고발권 폐지 등 재추진
▶본지 5월 18일자 A1, 3면 참조공정위와 법무부는 10일 각각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과 상법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발표했다. 2018년 국회에 넘겼지만 야당 반대로 처리되지 않고 21대 국회 구성과 함께 자동 폐기된 법안들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전에 제출한 법안과 사실상 똑같은 내용”이라며 “가을 국회 처리를 목표로 다시 개정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가격 및 입찰 담합 등에 의심을 가진 누구라도 검찰에 고발할 수 있게 된다. 고발이 들어오면 검찰은 반드시 수사해야 한다. 지금은 공정위만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또 ‘총수 사익편취’ 감시 대상에 올라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을 추가로 받는 기업도 늘어난다. 감시 대상 기준을 총수 일가가 지분 30%를 가진 상장사에서 20%로 낮추는 데 따른 것이다.
상법이 개정돼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모회사 주주는 불법 행위를 한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상장회사의 경우 지분을 0.01%만 갖고 있더라도 이런 소송이 가능해진다.
경영계 관계자는 “정부안대로 되면 기업 대상 소송이 남발될 가능성이 있다”며 “코로나19에 맞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 의지와 상충된다”고 비판했다.'일감 몰아주기' 강화땐 SK·현대차·한화 등 지분 4兆 팔아야할 판“좌우에서 동시에 펀치를 맞은 것 같습니다.”(대기업 대관 담당 고위임원)
기업들이 공정거래위원회와 법무부를 ‘가장 두려운 정부기관’으로 꼽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배구조를 다루는 공정거래법(공정위)과 상법(법무부)을 소관 법령으로 주무르며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두 부처가 짠 듯이 같은 날 공정거래법과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자 기업들은 ‘초긴장’ 상태다.
규제 피하기 위해 억지로 지분 내놔야10일 경제계에 따르면 공정위가 입법예고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삼성생명, 현대글로비스, SK(주), 한화 등 총 24곳이 내부거래 규제 대상에 새로 포함된다. 개정안에 총수 일가 사익편취(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총수 일가 지분율 30% 이상 대기업 상장사’에서 ‘20% 이상 상장사’로 확대하는 내용이 들어가면서다. 만약 법 개정안 적용 대상에 일감몰아주기 규제 기업의 자회사(총수 일가 지분 50% 이상)까지 포함되면 SK머티리얼즈 등 총 381개 기업이 공정위 감시 리스트에 추가된다.
기업이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내부거래를 줄이거나 총수 일가 지분율을 낮추는 것이다. 이들 기업 중엔 경영상의 필요나 효율성에 따라 내부 거래를 하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SK그룹의 SI(시스템통합)사업을 담당하는 SK(주), 현대차 물류를 책임지는 글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갑자기 거래 규모를 줄이는 건 불가능하다”며 “더구나 공급망의 안정적 관리가 중요해진 상황에서 규제 강도를 높이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총수 일가 지분을 20% 밑으로 낮춰 규제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24개 상장사가 팔아야 할 주식 규모(10일 종가 기준)는 총 4조688억원에 달한다. 기업별로는 SK(주)(9.08%, 1조6419억원), 현대글로비스(9.99%, 4177억원), 이마트(8.56%, 2792억원) 등의 매각 대상 주식 규모가 크다.
경영권 공격받을 가능성 커져기업들은 난처한 상황이다. 총수일가 지분율이 10%대로 낮아지면 그만큼 경영권을 위협받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과거 삼성, 현대자동차그룹 핵심 계열사 지분을 산 뒤,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한 해외 헤지펀드들은 여전히 국내 기업을 모니터링하며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오너의 지분율이 낮아지면 투기자본이 지배구조를 공격하는 빌미가 된다”고 말했다.
많게는 1조원이 넘는 대규모 지분을 받아줄 우호적인 기관투자가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대규모 거래엔 ‘할인’이 관행이기 때문에 금전적인 손실도 감수해야 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블록딜을 할 것이란 사실이 알려지면 주식가치가 크게 떨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악의 경우 시장에 총수일가 지분이 풀리면 주가 하락으로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생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강화되는 규제에 “생존 걱정”
경제계에선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나온다.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미·중 패권전쟁 등으로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있어서다. 한 대기업 임원은 “생존을 위해 경영활동에 집중해도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기업 지배구조, 규제 영향 등을 검토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게 너무 아깝다”고 말했다.내부거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확대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내부거래가 ‘범법행위’로 낙인찍히면서 기업들이 정당한 내부거래도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경제단체 고위 관계자는 “계열사 간 거래는 대부분 수직계열화에 따른 효율성 추구, 거래 안정성, 상품·용역의 품질유지 등을 목적으로 하는 정상적인 범위 내에서 이뤄진다”며 “공정위가 주장하는 사익편취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노경목/안효주/황정수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