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는 판결을 먹고 자란다"…조주빈 재판은 어떤 판례로 남을까 [남정민 기자의 서초동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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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양형이요? 양형기준을 높이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지금 있는 양형이라도 잘 지키는 게 중요해요. 아무리 양형을 높이면 뭐합니까 실제로 판결 나오는 건 집행유예가 허다한데... 성범죄는 판결을 먹고 자랍니다."
지난 4~5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한창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논의할 때 성범죄 전문가인 한 변호사가 한 말입니다. "성범죄는 판결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무리 법정형을 징역 10년, 13년으로 높여도 실제 판결에서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치는 결과가 반복된다면 누가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겠냐는 뜻이었습니다. 물론 재판은 각 사건의 개별성을 고려해 선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범죄, 심지어 아동·청소년이 피해자인 성범죄서도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추세와 동향분석 결과’(2017년 기준)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한 성범죄자 중 80% 가량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지난 5일 여중생들을 협박해 성착취물 영상 70여개를 제작·배포한 '로리대장태범' 배모군에게 미성년자 법정 최고형인 장기 10년, 단기 5년이 선고된 것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입니다.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재판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높습니다. 지난 11일 조주빈, '태평양' 이모군, 사회복무요원 강모씨의 첫 공판기일이 열렸습니다. 공판준비기일 절차가 끝나고 열린 첫 정식 재판인데 공판 시작 전부터 법정 출입구 앞은 많은 방청객들로 붐볐습니다.
2시 5분경 재판부가 입정한 뒤 피고인들은 조주빈, 이모군, 강모씨 순으로 차례로 입정했습니다. 모두 베이지색 수의를 착용한 채였습니다. 조주빈은 검정 마스크를 쓴 채 차분히 검찰과 재판대 쪽을 응시했습니다. 직업을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는 '특별히 없다'고만 말했습니다. 그간 공판준비기일에 나오지 않던 이모군은 이날 처음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몸집도 작은데다 한눈에 봐도 앳된 티가 났습니다. 직업을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는 '학생'이라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주소 등을 확인하는 질문에도 너무 작게 말한 탓에 재판부가 "네?" "뭐라고요?" 라고 재차 묻기도 했습니다. 이모군은 조주빈과 함께 피해자들의 성착취 영상물을 박사방에 게시하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태평양 원정대'라는 성착취물 공유방을 별도로 꾸리기도 해 '조주빈 후계자'로 불린 인물입니다.
사회복무요원 강모씨는 재판에 집중하기 힘든지 연신 몸을 움직이고 흔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주소와 인적사항 등을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는 마치 '랩'을 하듯 순식간에, 매우 빠르게 답변했습니다. 이날 재판부는 피해영상을 법정에서 어떻게 확인할지를 두고 고심했습니다. 피해자 측 변호사는 증거조사와 관련해 영상을 법정에서 재생하는 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조주빈 측이 동의하지 않은 증거를 조사하기 위해선 법정에서 해당 증거를 확인해야 하는데 2차 피해가 있을 수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면서 증거영상을 판사실에서 재생하는 방법을 제안했는데 재판부는 난색을 표했습니다.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나간 상태에서 영상을 트는 것 역시 법리적으로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저희도 이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실제 6월 11일 재판 내용>
▶재판부 : 증거조사 방식에 대해 피해자 변호사께서 내주신 게 있습니다. 영상증거 관련된 부분이죠?
▶피해자 측 변호사 : 네
▶재판부 : 제가 봤는데 해드리기 어려운 것도 많습니다. 우선 녹음, 녹화 매체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재생해 청취·시청하도록 돼 있는데 이걸 안 하면 증거로 채택할 수가 없습니다.
▶피해자 측 변호사 : 영상을 재생해서 증거조사를 하는 것은 법정에서 하기보다는...
▶재판부 : 그럼 어디서 할까요?
▶피해자 측 변호사 : 다른 사건보니 재판장께서 (판사실에서) 조사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재판부 : 구속피고인 다 있어야 하고, 저 있어야 하고, 검사님들 있어야 하고. 저희 방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저희도 지금 증거조사와 관련해 영상시청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성범죄 재판은 사건 특성상 비공개로 진행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날 재판서도 검찰의 공소사실 낭독은 비공개로 진행됐습니다. 앞으로 있을 증인신문 절차 역시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조주빈 재판이 끝난 후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는 일상을 회복하고, 가해자는 처벌을 받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피해자 공동변호인단 소속 오선희 변호사는 "조주빈과 공범들은 피해자에게 폭행이나 협박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피해자에게 비난을 돌리고 있다"며 "가해자들은 여성이 먼저 고수익 알바에 응했다고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성착취 영상물의 피해자가 되기를 자원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 활동가 '리아'씨는 "애초에 피해자가 어떤 행동을 했든, 어떤 사람이건 간에 성범죄의 원인은 100% 가해자의 잘못"이라며 "일탈계를 했든, 고수익 알바를 했든 성착취를 당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영상 구할 수 있나요?', '성의식이 잘못됐으나 형사처벌 받은 전과가 없다', '나는 N번방 들어간 적 없는데 왜 **이야', '"악마의 삶"'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기자회견을 이어갔습니다. 조주빈은 아주 예외적인 '악마'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도 평범한 '일반인'에 가깝다는 취지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학생으로 학보사 활동을 하기도 했고 장애인시설과 보육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평범한' 인물이 두 얼굴을 가지고 저지른 일이라는 겁니다. 한 성범죄 전문가는 “불법촬영물을 공유하고 동료 여성에 대한 성적 모욕을 일삼는 학교·회사 등의 단톡방이 n번방과 무관한가"라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성범죄는 판결을 먹고 자란다고 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산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과연 어떤 판례로 남게 될까요? 이목이 집중된 조주빈과 그 공범들의 재판은 오는 25일 속행됩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지난 4~5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한창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논의할 때 성범죄 전문가인 한 변호사가 한 말입니다. "성범죄는 판결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무리 법정형을 징역 10년, 13년으로 높여도 실제 판결에서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치는 결과가 반복된다면 누가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겠냐는 뜻이었습니다. 물론 재판은 각 사건의 개별성을 고려해 선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범죄, 심지어 아동·청소년이 피해자인 성범죄서도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추세와 동향분석 결과’(2017년 기준)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한 성범죄자 중 80% 가량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지난 5일 여중생들을 협박해 성착취물 영상 70여개를 제작·배포한 '로리대장태범' 배모군에게 미성년자 법정 최고형인 장기 10년, 단기 5년이 선고된 것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입니다.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재판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높습니다. 지난 11일 조주빈, '태평양' 이모군, 사회복무요원 강모씨의 첫 공판기일이 열렸습니다. 공판준비기일 절차가 끝나고 열린 첫 정식 재판인데 공판 시작 전부터 법정 출입구 앞은 많은 방청객들로 붐볐습니다.
2시 5분경 재판부가 입정한 뒤 피고인들은 조주빈, 이모군, 강모씨 순으로 차례로 입정했습니다. 모두 베이지색 수의를 착용한 채였습니다. 조주빈은 검정 마스크를 쓴 채 차분히 검찰과 재판대 쪽을 응시했습니다. 직업을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는 '특별히 없다'고만 말했습니다. 그간 공판준비기일에 나오지 않던 이모군은 이날 처음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몸집도 작은데다 한눈에 봐도 앳된 티가 났습니다. 직업을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는 '학생'이라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주소 등을 확인하는 질문에도 너무 작게 말한 탓에 재판부가 "네?" "뭐라고요?" 라고 재차 묻기도 했습니다. 이모군은 조주빈과 함께 피해자들의 성착취 영상물을 박사방에 게시하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태평양 원정대'라는 성착취물 공유방을 별도로 꾸리기도 해 '조주빈 후계자'로 불린 인물입니다.
사회복무요원 강모씨는 재판에 집중하기 힘든지 연신 몸을 움직이고 흔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주소와 인적사항 등을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는 마치 '랩'을 하듯 순식간에, 매우 빠르게 답변했습니다. 이날 재판부는 피해영상을 법정에서 어떻게 확인할지를 두고 고심했습니다. 피해자 측 변호사는 증거조사와 관련해 영상을 법정에서 재생하는 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조주빈 측이 동의하지 않은 증거를 조사하기 위해선 법정에서 해당 증거를 확인해야 하는데 2차 피해가 있을 수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면서 증거영상을 판사실에서 재생하는 방법을 제안했는데 재판부는 난색을 표했습니다.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나간 상태에서 영상을 트는 것 역시 법리적으로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저희도 이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실제 6월 11일 재판 내용>
▶재판부 : 증거조사 방식에 대해 피해자 변호사께서 내주신 게 있습니다. 영상증거 관련된 부분이죠?
▶피해자 측 변호사 : 네
▶재판부 : 제가 봤는데 해드리기 어려운 것도 많습니다. 우선 녹음, 녹화 매체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재생해 청취·시청하도록 돼 있는데 이걸 안 하면 증거로 채택할 수가 없습니다.
▶피해자 측 변호사 : 영상을 재생해서 증거조사를 하는 것은 법정에서 하기보다는...
▶재판부 : 그럼 어디서 할까요?
▶피해자 측 변호사 : 다른 사건보니 재판장께서 (판사실에서) 조사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재판부 : 구속피고인 다 있어야 하고, 저 있어야 하고, 검사님들 있어야 하고. 저희 방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저희도 지금 증거조사와 관련해 영상시청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성범죄 재판은 사건 특성상 비공개로 진행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날 재판서도 검찰의 공소사실 낭독은 비공개로 진행됐습니다. 앞으로 있을 증인신문 절차 역시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조주빈 재판이 끝난 후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는 일상을 회복하고, 가해자는 처벌을 받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피해자 공동변호인단 소속 오선희 변호사는 "조주빈과 공범들은 피해자에게 폭행이나 협박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피해자에게 비난을 돌리고 있다"며 "가해자들은 여성이 먼저 고수익 알바에 응했다고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성착취 영상물의 피해자가 되기를 자원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 활동가 '리아'씨는 "애초에 피해자가 어떤 행동을 했든, 어떤 사람이건 간에 성범죄의 원인은 100% 가해자의 잘못"이라며 "일탈계를 했든, 고수익 알바를 했든 성착취를 당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영상 구할 수 있나요?', '성의식이 잘못됐으나 형사처벌 받은 전과가 없다', '나는 N번방 들어간 적 없는데 왜 **이야', '"악마의 삶"'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기자회견을 이어갔습니다. 조주빈은 아주 예외적인 '악마'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도 평범한 '일반인'에 가깝다는 취지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학생으로 학보사 활동을 하기도 했고 장애인시설과 보육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평범한' 인물이 두 얼굴을 가지고 저지른 일이라는 겁니다. 한 성범죄 전문가는 “불법촬영물을 공유하고 동료 여성에 대한 성적 모욕을 일삼는 학교·회사 등의 단톡방이 n번방과 무관한가"라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성범죄는 판결을 먹고 자란다고 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산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과연 어떤 판례로 남게 될까요? 이목이 집중된 조주빈과 그 공범들의 재판은 오는 25일 속행됩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