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쇼어링 지원한다는데 왜 기업은 안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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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운영하던 공기압축기 공장을 한국으로 이전했다가 법정관리를 신청해야 했던 민덕현 거성콤프레샤 사장이 세종시 공장에서 회한에 젖은 표정으로 재고품을 살펴보고 있다.
“20년간 중국에서 모은 돈을 한국에 돌아와 모두 날렸습니다.”

민덕현 거성콤프레샤 사장은 “유턴(해외 진출했다가 본국 복귀)기업을 적극 지원한다고 해서 한국에 들어왔지만 사업 시작도 제대로 못한 채 수십억원의 빚더미에 앉게 됐다”고 토로했다. 중국 칭다오에서 공기압축기(에어컴프레서) 제조공장을 운영하던 민 사장은 2015년 6월 세종시와 ‘유턴기업 지원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세종시는 근로자 1인당 1050만원의 고용보조금 지급을 비롯해 입지보조금 40%, 설비투자보조금 24% 지원 등을 당근으로 내걸었다.그는 MOU를 체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 복귀 결정을 후회했다고 한다. 세종시가 국내 사업 이력과 담보물이 없는 민 사장에게 투자보조금 지원 조건으로 보증보험증권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면서다. 그는 보증료 1억6000만원과 예치금 3억5000만원 등 약 5억원을 급히 빌려야 했다. 민 사장은 2017년 7월 공장을 준공한 직후 바로 고용보조금을 신청했지만 뜻밖에 ‘지급 거절’을 당했다. 유턴 MOU를 체결하고 석 달 안에 40명을 고용하는 것을 전제로 보조금 지급을 약속했는데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였다. 민 사장은 “듣도 보도 못한 조건”이라며 “공장을 착공하기도 전에 직원 40명을 고용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억울해했다. 그는 “유턴기업 유치 때와는 너무 달라진 공무원들을 보고 정부에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고개를 저었다.
파격지원 약속하더니 추가조건 내걸어

정부가 2013년 12월 ‘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유턴기업법)을 시행한 뒤 국내에 돌아온 업체는 총 80개. 이 가운데 조업 중인 곳은 41개뿐이다. 9개사는 폐업하거나 투자를 철회했다. 나머지는 지지부진한 투자 절차를 밟고 있다. 유턴기업법 시행 초기인 2014년 20개였던 유턴기업 수도 이듬해부터 10개 안팎으로 떨어졌다. 정부는 2018년 11월 고용보조금 등 인센티브 강화를 골자로 한 유턴기업 종합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해 12월 유턴법 개정과 올 2월 코로나 수출 대책 마련 등을 통해 제도를 보완했다. 지원 대상 업종을 제조업에서 정보통신업과 지식서비스업으로 넓히고, 대기업도 지원 대상에 포함했다.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경폐쇄와 자국우선주의 등에 대응해 해외에 진출한 기업을 국내로 유인하기 위한 리쇼어링(본국 회귀) 정책을 잇달아 내놨다. 해외 사업장을 25% 이상 축소해야 한다는 조건을 없애고 생산량 감축에 비례해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해외 생산시설의 1%만 국내로 들여와도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리쇼어링에 대한 정부 지원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파격지원을 약속해놓고 기업들이 돌아오면 온갖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있어서다. 2016년 중국에서 세종시로 돌아온 유압 실린더 전문 제작업체 A사 대표는 “국내에 돌아온 뒤 상주 직원 45명을 고용하지 못해 고용보조금을 받지 못했다”며 지방에 와서 일할 실린더 기술자를 구할 수 없어 중국에서 함께 일하던 현지 기술자를 몰래 데려와 쓰다가 벌금 1400만원을 문 적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은 유턴기업의 무덤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관건정부의 최근 리쇼어링 지원책도 수도권 공장총량제 등 수도권 입지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업계 요구를 외면했다. KOTRA가 유턴기업을 대상으로 지난 4월 설문조사한 결과 지원 확대가 필요한 정책으로 응답자의 36%가 투자보조금을 꼽았다. 세제 지원(20%), 자동화 설비 지원(15%), 환경규제 완화(14%), 금융 지원(11%) 등이 뒤를 이었다. 해외로 진출한 기업들이 다시 돌아오려면 무엇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산업계는 입을 모은다. 주 52시간 근로제 관련 특별연장근무를 월 100시간까지 인정해주거나, 지난 3년 동안 32.8%나 오른 최저임금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등 경영환경 개선을 위한 규제 혁파가 필수라는 지적이다.

미국·일본의 파격지원과 대비돼

미국은 2009년 2월 ‘미국 국가재생·재투자법(ARRA)’을 제정해 기업들의 유턴을 유도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근로장려 세액공제와 실업보험 급여기간 연장에 더해 기업 투자 촉진 정책을 대거 시행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낮추는 파격적인 감세와 복귀 기업에 이전비용의 20%를 보조하는 등의 당근책을 내놨다. 그 결과 2010년 이후 9년간 총 3327개 기업이 미국으로 돌아와 34만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일본도 2013년 ‘일본재흥전략’을 내걸고 규제 철폐, 법인세 인하, 경제특구 도입 등 기업환경 개선에 나섰다. 그 결과 2015년 724개, 2016년 834개, 2017년 774개 기업이 복귀했다. 올 들어 코로나19 사태로 제조업의 글로벌 공급망이 끊어지는 상황이 발생하자 일본은 중국 등에서 돌아오거나 제3국으로 이전하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2435억엔(약 2조7000억원)의 보조금을 예산안에 포함시켰다.

민경진/서기열 한국경제신문 기자 min@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세계 각국 정부가 법인세 인하, 보조금 지원 등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을 펴는 이유는 무엇일까.
②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붕괴, 외국인 입국 제한,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으로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본국 회귀)이 더욱 늘어날까.
③ 한국의 리쇼어링이 지지부진한 이유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