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조합·배열 달리해 레고 쌓듯이 새 물질 만든다

과학 이야기
과학과 놀자 (10) 위계구조의 물질세계

원자가 모여 분자→아미노산→펩타이드→단백질 생성
장난감 레고 빌딩블록을 떠올려보면, 기본적인 형태들이 몇 가지 존재하고 이것들의 조합과 배열로 수없이 다양한 구조물이 형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의 세계도 기본적인 단위체(편의상 앞으로 이를 빌딩블록이라 부르자)의 조합과 배열로 수없이 다양한 물질이 만들어진다.

더 놀라운 것은 원자와 같은 작은 단위의 빌딩블록으로 만들어진 분자들이 다시 더 큰 구조를 구성하기 위한 하나의 빌딩블록이 되는 위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위계적 빌딩블록으로 자연에서는 매우 정교하고 다양한 기능을 가진 물질들이 만들어지고 있다.2015년 개정 교육과정 문서에서는 물질을 구성하는 빌딩블록에 관한 내용이 여러 문장으로 제시되어 있다. 예를 들면, 통합과학 교과에서 “…생명체와 지각을 구성하는 단백질, 광물 등의 물질은 원소들 간의 규칙적인 화학 결합을 해 만들어지며, 기존 물질의 물리적 성질을 변화시켜 다양한 신소재를 개발한다…”와 같이 원자를 빌딩블록으로 하여 단백질과 광물 등의 다양한 물질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도록 설명한다.

그리고 빌딩블록으로 구성된 다양한 물질의 사례로 규산염 사구체를 빌딩블록으로 해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광물, 탄소와 수소 원자를 빌딩블록으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탄화수소 화합물, 아미노산 및 뉴클레오티드를 빌딩블록으로 하는 단백질과 DNA를 제시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빌딩블록은 무엇일까?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빌딩블록은 원자다. 현재까지 118개의 원자가 발견되었다. 원자들은 원자핵의 전하와 원자핵 주위의 전자가 오비탈(궤도함수)에 배치된 방식이 서로 다른데, 이러한 차이로 원자들이 서로 어떻게 조합하고 배열되는가에 영향을 미친다. 빌딩블록으로서의 원자는 그 자체로 안정한 상태를 유지할 수도 있는데 헬륨, 네온, 아르곤 등의 기체가 그 예이다. 이런 원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원자는 두 개 이상의 원자가 결합한 생태로 존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산소, 질소, 수소 등 이원자 분자 또는 이산화탄소, 물 등 다원자 분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 물질들을 보면 빌딩블록의 종류에 따라 만들어지는 물질이 달라지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림1> 탄소로만 이루어진 물질들. a는 다이아몬드, b. 흑연, c. C60 풀러렌, d. 탄소 나노튜브.
한편 다이아몬드, 흑연, C60 풀러렌(60개의 탄소로 이루어진 탄소 나노물질), 탄소 나노튜브 등은 모두 탄소 원자를 빌딩블록으로 만들어진 물질이다. 이들은 색, 단단함, 전기 전도성 등 물질의 성질이 서로 많이 다르다. 동일한 빌딩블록을 사용했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빌딩블록이 배열<그림 1>하여 만들어진 서로 다른 물질이기 때문이다.

위계적 빌딩블록의 조합이 제공하는 효율성원자가 빌딩블록이 되어서 분자를 만들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분자가 또 한 단위의 빌딩블록이 되어서 더 크고 복잡한 구조의 물질을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거대 단백질을 구성하는 빌딩블록의 위계<그림 2>를 들 수 있다.
&lt;그림2&gt; 거대 단백질을 구성하는 물질 위계구조. 위키피디아에서 재인용
아미노산은 탄소, 수소, 산소, 질소 빌딩블록이 조합하여 만들어진 분자이다. 자연에는 그림 속 R의 위치가 다른 500여 개의 아미노산이 발견되는데, 생명체에서 이용하는 아미노산은 20개가 있다.

20개의 아미노산은 한 단위의 새로운 빌딩블록이 되어서 아미노산들이 선형으로 연결된 펩타이드 사슬을 만든다. 20종의 아미노산 N개가 긴 사슬을 구성하는 배열 방법은 20n 개로 매우 많은 수의 서로 다른 사슬을 만들 수 있다.이 사슬은 다시 하나의 빌딩블록이 되어서 α-helix 또는 β-sheet와 같은 단백질 조각을 만든다. 다시 이 조각들이 빌딩블록이 되어서 여러 가지 조합으로 헤모글로빈과 같은 커다란 단백질을 만든다.

하나의 빌딩블록만 바꿔도 전체의 구조와 기능이 달라져

4개의 뉴클레오티드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DNA 또는 RNA도 빌딩블록의 위계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예이다. 이렇게 여러 계층의 빌딩블록 위계를 이용해 물질을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 무엇보다는 중요한 것은 특정 빌딩블록을 선택함으로써 큰 구조체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크기가 5㎚(나노미터)인 헤모글로빈 단백질은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수송하는 역할을 매우 정교하게 수행하고 있다. 헤모글로빈의 어느 사슬에서 (+) 전하를 띤 아미노산인 글루탐산을 중성 아미노산으로 변이시키면, 분자 사이의 전기적 상호작용을 깨뜨려 전체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의 변화를 가져와서 낫형 적혈구가 만들어지고 빈혈이라는 질병이 유발된다.

즉, 매우 긴 단백질 사슬 안의 단 한 개의 빌딩블록이 달라지면 중요한 위치에서 분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변화시켜서 단백질 전체의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킬 수 있다.
정대홍 서울대 화학교육과 교수
이처럼 자연은 빌딩블록을 이용하여 매우 다양한 물질을 만들고 있다. 빌딩블록의 위계를 이용하면 더 정교하게 물질의 기능을 조절할 수 있고, 엄청나게 다양한 숫자의 물질을 만들 수 있다. 나노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물질세계에서 보이는 빌딩블록 위계의 장점을 인식하고 새로운 나노 물질을 합성할 때 여러 단계의 빌딩블록 위계를 이용하여 물질의 성질과 기능을 조절하고 있다.

기억해주세요자연은 기본적인 단위체(빌딩블록이라고 표현)의 조합과 배열로 매우 다양한 물질을 만들고 있다.

빌딩블록의 위계를 이용하면 더 정교하게 물질의 기능을 조절할 수 있고, 엄청나게 다양한 숫자의 물질을 만들 수 있다. 나노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물질세계에서 보이는 빌딩블록 위계의 장점을 인식하고 새로운 나노 물질을 합성할 때 여러 단계의 빌딩블록 위계를 이용하여 물질의 성질과 기능을 조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