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조촐한 94세 생일잔치 연 엘리자베스 英여왕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94세 공식 생일행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규모가 대폭 축소된 채 조촐하게 치뤄졌다.

여왕은 자신의 ‘공식 생일’인 13일(현지시간) 런던 인근 윈저성에서 약식으로 진행된 공식 생일 행사에 모습을 나타냈다. 여왕의 생일은 4월21일이지만, 매년 6월 둘째주 토요일에 공식 생일행사를 연다. 이 때 버킹엄궁전과 세인트제임스파크를 잇는 더몰에선 100년 전통의 퍼레이드인 ‘트루핑 더 컬러’(Trooping the Colour)가 열린다. 여왕은 이 때 버킹엄궁에서 왕실 가족들과 함께 황금마차를 타고 더몰을 행진한다. 1400명의 왕실근위대가 여왕을 호위한다. 이어 200명의 기마부대와 취주악단의 행렬이 이어진다.

원래 직접 말을 타고 다니는 것이 전통이지만 여왕은 건강상의 이유로 마차를 탄다. 여왕은 행진을 끝낸 후 장병들을 사열한다. 이 행사에 맞춰 런던 하이드파크에서는 총 41발의 예포를 쏘아 올린다. 21발은 여왕에 대한 예우다. 이를 ‘로얄샬루트’라고 부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카치 위스키인 로얄샬루트 21년산도 여기서 유래됐다. 나머지 20발은 런던의 평안을 기원하는 예포다.

통상 여왕의 공식 생일행사는 수천명의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몰리는 왕실의 대표적인 행사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약식행사로 대체됐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52년 즉위한 후 퍼레이드가 취소된 건 1955년 철도파업 때가 유일했다.이날 약식행사는 여왕의 공식 주거지인 버킹엄궁이 아닌 윈저성 안뜰에서 진행됐다. 여왕은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 지난 3월부터 남편 필립공과 함께 런던에서 30여㎞ 떨어진 윈저성에서 머물고 있다. 영국 군주의 공식 생일행사가 윈저성에서 열린 것은 1895년 빅토리아 여왕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약식행사엔 웨일스근위대(Welsh Guards)가 투입됐다. 1915년 창설된 웨일스근위대는 보병연대로, 왕실근위대의 일원이다. 대원들은 정부의 코로나19 예방지침에 따라 서로 2m의 거리를 유지한 채 행진했다. 행진 후엔 여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예포가 발사됐다.

여왕은 이날 에메랄드빛 코트와 모자를 쓴 채 근위대의 행사를 지켜봤다. 여왕이 TV 연설 등을 제외하고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3월 이후 석 달만에 처음이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