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 레슨·인스타툰·브이로그까지…2030변호사들의 남다른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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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로펌 사무실에 '리그오브레전드(LOL)' 코치들이 모였다. LOL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e스포츠 게임 종목. 젊은 20~30대 변호사들이 한 공간에 모여 LOL 프로게임단 소속 코치가 지시하는 대로 LOL 게임 화면을 누비고 있었다.“부족한 ‘스킬’을 익히기 위해 코치를 초빙했습니다.” 법무법인 비트의 송도영 파트너 변호사의 얘기다. 이날 '원포인트' 레슨은 한 시간 반 가량 이어졌다.
변호사 3만명 시대. 무한경쟁이 벌어지는 법률시장에서 개성을 뽐내는 젊은 변호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젊은층이 즐겨하는 게임 기술을 연마하거나 인스타그램에 사건과 사연을 소개하는 웹툰을 올리고, 변호사의 업무와 일상을 보여주는 '브이로그'를 찍는 등 각양각색의 '개인기'를 앞세워 각자의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권위 대신 '게임' 통해 친근한 변호사로법무법인 비트의 사무실 한편엔 최고급 사양의 컴퓨터 5대가 마련돼있다. PC방에서나 볼 수 있는 게이밍 전용 키보드와 의자도 갖췄다. 이 곳을 찾는 고객들은 주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및 정보기술(IT) 분야 종사자들. 대학생부터 30~40대로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 많다.
변호사들이 나서서 '게임방'을 꾸민 건 2여년 전부터다. 온라인 게임을 통해 함께 일하는 변호사들끼리 화합을 다지는 것은 물론, 젊은 의뢰인들을 대상으로 영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송도영 변호사는 "스타트업 업계에 종사하는 고객들과는 술 한잔보다는 LOL 게임 한 판을 하는 게 더 낫다"며 "상대방 팀 공격을 대신 맞아주거나 아이템을 주고 받다보면 자연스럽게 친해진다"며 웃었다.
이같은 시도는 대표인 최성호 변호사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이기도 했다. 최 변호사는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이공계 출신 법조인이다. 대학 재학 시절, 프로그래머가 되기를 꿈꿨을 정도로 '게임덕후'였다. 로펌 구성원 대다수를 차지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의 호응도 한 몫 했다. '사법고시'를 치룬 최 변호사와 송 변호사를 제외한 나머지 8명은 모두 로스쿨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시험을 통과한 20~30대 변호사들이다. 밤을 지새우는 회식보다는 온라인 게임이 더 익숙한 세대다. 송 변호사는 "LOL 게임을 다함께 즐기는 건 변하는 시대상에 적응하고,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했다.
이혼 사건을 주로 다루는 최유나 변호사는 '인스타툰(인스타그램+웹툰)'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이름을 알린 경우다. 10~30대가 많이 사용하는 사진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 만화를 올리고 있다. 최 변호사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사건들을 각색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친근한 그림체로 풀어냈다. 고부갈등, 육아문제, 불륜 등 주제도 다양하다.
최 변호사가 2018년 9월 첫 게시물을 올린 후 약 2년 만에 팔로워는 19만명을 넘어섰다. 만화를 한데 모은 책《우리 이만 헤어져요》는 1만권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최 변호사는 "만화의 내용에 공감해 댓글로 개인사를 공유해주는 사람들도 많다"며 "결혼 생활에 어려움을 겪은 20~30대 의뢰인들이 만화를 보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일상을 공유하는 영상으로 팬클럽까지 생긴 변호사도 있다. 유튜버 '킴변'으로 활동하는 김지수 변호사는 자신의 생활을 '브이로그' 영상으로 올리며 이목을 끌었다. '변호사 출근길' '구치소 접견 가는 길' 등 변호사라면 늘상 겪지만,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일상을 편집해 올린다. 재판에서 이긴 날에는 '승소 기념 흰머리뽑기 ASMR'을 올리는 등 1020 세대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선보인다. ASMR이란 청각, 시각, 촉각 등을 이용해 뇌를 자극하고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것인데 소곤소곤 속삭이듯 제작한 영상 등을 가리킨다.김지수 변호사의 채널을 구독하는 사람은 14만여명에 달한다. 김 변호사의 팬들은 '가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변호사 유튜버인만큼 악플이 없어 '댓글창이 가재가 살 정도로 깨끗하다'는 의미에서 비롯됐다. 김 변호사는 지난 14일 온라인 게임 'GTA'에서 이들을 만나 함께 게임을 즐기는 팬미팅을 열기도 했다.
안효주/이인혁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