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의 'ASEAN 톺아보기' (43)] 캄보디아의 '스트롱 맨' 훈센
입력
수정
지면A33
앙코르와트의 나라, 캄보디아의 공식 국명은 ‘캄보디아왕국’이다. 1953년 프랑스 지배로부터 독립해 캄보디아왕국을 선포했는데, 크메르공화국·캄푸치아민주공화국·캄푸치아인민공화국·캄보디아국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1993년에 다시 캄보디아왕국으로 돌아왔다. 독립 후 반세기 동안 다섯 차례나 국명을 바꿀 정도로 캄보디아 현대사는 혼란과 굴곡으로 점철돼 있다.
훈센 총리는 지난 1월 집권 35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36년째 총리를 지내고 있는 세계 최장수 지도자다. 그는 베트남에 망명 중이던 1979년 헹삼린과 함께 킬링필드로 악명 높던 폴포트를 축출하고 정권을 잡았다. 외교장관에 취임한 그는 1985년 총리(외교장관 겸임)로 급부상했다. 32세 때였다.대부분 동남아시아 국가가 그렇듯이 캄보디아도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바로 독립이 주어지지 않았다. 옛 식민세력인 프랑스가 지배권을 놓으려고 하지 않아 8년간의 협상 끝에 독립을 쟁취했다. 동서냉전 구도 속에서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은 비동맹 중립 노선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60년대 중반 베트남 전쟁이 확산되고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우파의 론놀 장군은 1970년 쿠데타를 일으켜 시아누크를 폐위하고 군주제를 종식시켰다.
세계 최장수 36년째 집권
18세의 훈센은 학업을 중단하고 공산주의 세력인 크메르 루주에 가입했다. 그러나 당시 인구 700만 명 중 약 20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크메르 루주의 숙청을 두려워한 훈센은 1977년 베트남으로 도주했다. 1979년 1월 베트남군의 지원을 업은 헹삼린과 훈센은 크메르 루주의 폴포트 정권을 무너뜨리고 ‘캄푸치아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캄보디아 내전은 격화됐고, 베트남 세력의 확대에 위기를 느낀 아세안 국가들은 헹삼린-훈센 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시아누크, 폴포트 및 손산(반공세력) 등 3개 정파의 반(反)헹삼린 연합세력인 ‘민주캄푸치아연립정부’가 유엔에서 캄보디아 정통 정부로 인정받았다.
유엔 주도로 1991년 캄보디아 분쟁 해결을 위한 네 개 세력 간 파리평화회담이 타결됐다. 이에 따라 유엔 캄보디아과도행정기구(UNTAC)가 구성됐고, 1993년 캄보디아에서 첫 자유 총선이 실시됐다. 훈센의 캄보디아인민당(CPP)은 시아누크에 제1당 자리를 내줬으나, 연립을 통해 시아누크의 아들 라나리드 왕자가 제1총리, 훈센은 제2총리를 맡았다. 신헌법에 따라 시아누크를 국왕으로 하는 입헌군주제가 부활했다. 정치적 갈등이 무력충돌로 확산하는 가운데 훈센은 1997년 라나리드를 축출하고, 그다음 해 선거를 통해 단일 총리로 전권을 장악하면서 ‘스트롱 맨’으로 불렸다. 그러나 훈센의 정치적 거사를 못마땅해한 아세안 국가들은 캄보디아의 아세안 가입을 거부했다. 아세안은 1997년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의 가입을 결정했고, 캄보디아는 1999년에야 비로소 열 번째 마지막 회원국이 됐다.
'크메르의 영광' 꿈꾸는 선의의 독재자?훈센은 5년마다 치러지는 총선에서 승리하며 통치 기반을 확고히 했다. 그러나 2013년 선거에서는 야당 지도자 삼랑시의 거센 도전을 받았고, 2018년 총선은 삼랑시의 해외 망명, 제1 야당 캄보디아구국당(CNRP)의 강제 해산과 켐소카 대표의 체포 등 경쟁 없이 치러진 것이었다. 반대 세력에 대한 강경 조치에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인권·민주주의 침해를 이유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EU는 무역특혜(EBA)를 일부 철회하기로 했는데 이 조치가 오는 8월 12일 실제 적용되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EU는 캄보디아 수출의 46%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 대상국이어서다. 미국도 제재법안을 발의 중이며 일반특혜관세제도(GSP) 철회를 압박하고 있다. 이는 친중(親中) 정책을 펴고 있는 캄보디아가 중국에 더 의존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한편, 훈센의 자녀 등 집권층 2세의 정계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미국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영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딴 장남 훈마넷 육군 참모총장(42)이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다.
강력한 리더십과 정치 수완으로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2000년대에 줄곧 7%대 경제 발전을 구가해 온 훈센 총리는 국내외 도전 과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까. 《훈센: 캄보디아의 스트롱 맨》 《스트롱 맨: 훈센의 비상한 삶》을 저술한 해리시 메타는 늘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며 노래를 작사·작곡하기도 하는 훈센을 ‘선의의 독재자(benign dictator)’로 묘사하면서, 훈센과 캄보디아의 장래에 대해 “캄보디아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스트롱 맨’ 훈센은 9~13세기 동남아 최강의 왕조 크메르 제국의 영광을 꿈꾸고 있을까. 그가 오랜 통치로 다져진 정권을 어떻게 다음 세대에 넘겨줄지 궁금하다.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
훈센 총리는 지난 1월 집권 35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36년째 총리를 지내고 있는 세계 최장수 지도자다. 그는 베트남에 망명 중이던 1979년 헹삼린과 함께 킬링필드로 악명 높던 폴포트를 축출하고 정권을 잡았다. 외교장관에 취임한 그는 1985년 총리(외교장관 겸임)로 급부상했다. 32세 때였다.대부분 동남아시아 국가가 그렇듯이 캄보디아도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바로 독립이 주어지지 않았다. 옛 식민세력인 프랑스가 지배권을 놓으려고 하지 않아 8년간의 협상 끝에 독립을 쟁취했다. 동서냉전 구도 속에서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은 비동맹 중립 노선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60년대 중반 베트남 전쟁이 확산되고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우파의 론놀 장군은 1970년 쿠데타를 일으켜 시아누크를 폐위하고 군주제를 종식시켰다.
세계 최장수 36년째 집권
18세의 훈센은 학업을 중단하고 공산주의 세력인 크메르 루주에 가입했다. 그러나 당시 인구 700만 명 중 약 20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크메르 루주의 숙청을 두려워한 훈센은 1977년 베트남으로 도주했다. 1979년 1월 베트남군의 지원을 업은 헹삼린과 훈센은 크메르 루주의 폴포트 정권을 무너뜨리고 ‘캄푸치아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캄보디아 내전은 격화됐고, 베트남 세력의 확대에 위기를 느낀 아세안 국가들은 헹삼린-훈센 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시아누크, 폴포트 및 손산(반공세력) 등 3개 정파의 반(反)헹삼린 연합세력인 ‘민주캄푸치아연립정부’가 유엔에서 캄보디아 정통 정부로 인정받았다.
유엔 주도로 1991년 캄보디아 분쟁 해결을 위한 네 개 세력 간 파리평화회담이 타결됐다. 이에 따라 유엔 캄보디아과도행정기구(UNTAC)가 구성됐고, 1993년 캄보디아에서 첫 자유 총선이 실시됐다. 훈센의 캄보디아인민당(CPP)은 시아누크에 제1당 자리를 내줬으나, 연립을 통해 시아누크의 아들 라나리드 왕자가 제1총리, 훈센은 제2총리를 맡았다. 신헌법에 따라 시아누크를 국왕으로 하는 입헌군주제가 부활했다. 정치적 갈등이 무력충돌로 확산하는 가운데 훈센은 1997년 라나리드를 축출하고, 그다음 해 선거를 통해 단일 총리로 전권을 장악하면서 ‘스트롱 맨’으로 불렸다. 그러나 훈센의 정치적 거사를 못마땅해한 아세안 국가들은 캄보디아의 아세안 가입을 거부했다. 아세안은 1997년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의 가입을 결정했고, 캄보디아는 1999년에야 비로소 열 번째 마지막 회원국이 됐다.
'크메르의 영광' 꿈꾸는 선의의 독재자?훈센은 5년마다 치러지는 총선에서 승리하며 통치 기반을 확고히 했다. 그러나 2013년 선거에서는 야당 지도자 삼랑시의 거센 도전을 받았고, 2018년 총선은 삼랑시의 해외 망명, 제1 야당 캄보디아구국당(CNRP)의 강제 해산과 켐소카 대표의 체포 등 경쟁 없이 치러진 것이었다. 반대 세력에 대한 강경 조치에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인권·민주주의 침해를 이유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EU는 무역특혜(EBA)를 일부 철회하기로 했는데 이 조치가 오는 8월 12일 실제 적용되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EU는 캄보디아 수출의 46%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 대상국이어서다. 미국도 제재법안을 발의 중이며 일반특혜관세제도(GSP) 철회를 압박하고 있다. 이는 친중(親中) 정책을 펴고 있는 캄보디아가 중국에 더 의존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한편, 훈센의 자녀 등 집권층 2세의 정계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미국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영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딴 장남 훈마넷 육군 참모총장(42)이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다.
강력한 리더십과 정치 수완으로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2000년대에 줄곧 7%대 경제 발전을 구가해 온 훈센 총리는 국내외 도전 과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까. 《훈센: 캄보디아의 스트롱 맨》 《스트롱 맨: 훈센의 비상한 삶》을 저술한 해리시 메타는 늘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며 노래를 작사·작곡하기도 하는 훈센을 ‘선의의 독재자(benign dictator)’로 묘사하면서, 훈센과 캄보디아의 장래에 대해 “캄보디아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스트롱 맨’ 훈센은 9~13세기 동남아 최강의 왕조 크메르 제국의 영광을 꿈꾸고 있을까. 그가 오랜 통치로 다져진 정권을 어떻게 다음 세대에 넘겨줄지 궁금하다.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