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법사위 가져갔다" 슈퍼여당 독주에 국회 시작부터 파행

사진=연합뉴스
집권 여당이 결국 17대 국회 이후 처음으로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가져갔다. 미래통합당은 “헌정사에 오명을 남길 폭거”라며 강력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통합당을 향해 “참을만큼 참았다”며 추가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나머지 상임위원장 선출도 강행할 것을 시사해 21대 국회 초반 파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6개 상임위원장 선출 강행민주당은 10일 본회의에서 21대 국회 전반기 법사위원장에 윤호중 민주당 의원 등 전체 18개 상임위원장 중 6개 상임위원장을 선출했다. 법사위원장 자리는 야당 몫이라고 주장해왔던 통합당 의원들은 상임위원장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만 불만을 표하는 항의 연설을 한 뒤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에 이학영 의원, 기획재정위원장에 윤후덕 의원, 국방위원장에 민홍철 의원, 보건복지위원장 한정애 의원, 외교통상위원회 송영길 의원 등 민주당 다선 의원들이 선출됐다. 통합당과의 원구성 협상 과정에서 11 대 7로 나눌 경우 민주당 몫으로 언급됐던 곳들이다. 통합당 몫으로 언급된 적이 있던 국토위, 정무위 등은 이날 제외됐다. 운영위 정보위 여가위 등 겸임상임위의 위원장 선출도 이뤄지지 않았다.

제1야당과의 합의 없이 여당이 사실상 단독으로 상임위원장을 뽑은 것은 위원장 선출 시기를 못박은 1994년 국회법 개정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18대 국회 때 원내 1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원구성 협상과정에서 상임위원장을 여당이 독식하겠다고 당시 야당을 위협한 적은 있지만 뜻을 관철하진 못했다. 오히려 17대 국회 때 ‘다수의 횡포를 저지하기 위한 장치’란 명분으로 야당 몫으로 받아온 법사위원장 자리를 야당에 넘겨줬다.○통합당 ”비리 덮겠다는 의지 드러낸 것“

이날 본회의에 앞서 여야 원내대표는 회동하며 막판 타결을 모색했지만 법사위원장 자리를 두고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서 합의가 불발됐다. 이해찬 대표는 이날 국회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지금까지 참을 만큼 참았고 할 수 있는 그 이상을 다했다”며 “우리는 단독으로라도 21대 국회를 일하는 국회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당장 3차 추경 등 처리할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더 이상 통합당과의 원구성 협상에 쓸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여당인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반드시 차지하려 하는 이유는 법사위가 ‘게이트(관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20대 국회에서 야당이 법사위를 통해 각종 개혁과제의 발목을 잡았다는 인식이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정운영을 위해서 법사위원장을 차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통합당은 압도적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법사위원장마저 가지게 될 경우 사실상 ‘야당 없는 국회’가 된다는 입장이다.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 정부의 비리를 끝까지 덮고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17대 국회 이후 관행적으로 법사위원장은 견제의 의미로 야당이 맡아왔다는 것이다.

○국회 파행 빚을 듯

통합당이 민주당의 상임위원장 선출에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당분간 국회는 파행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주 원내대표는 “상임위 강제 배정과 위원장 여당 단독 선출은 제헌 국회 이래 없어던 일”이라며 “민주당과 집권세력이 대한민국 헌정사에 오명을 남길 폭거를 기어코 자행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본회의 앞에 열린 통합당 의총에서도 차라리 민주당이 18개 상임위를 다 가져가게 하자는 등 강경한 발언이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주 원내대표가 책임지고 사퇴해야한다는 언급도 나왔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의총에서 ”민주당 의석 수로 보면 상임위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다“며 ”정무위나 국토위를 가지고 온다고 해서 할 수 있는게 없는데, 그걸 수용했을 때 국민들이 통하당을 어떻게 바라볼지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통합당이 더 이상의 협상을 거부하고 의사일정을 보이콧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국회 관계자는 ”당장 3차 추경 처리 등이 통합당의 참여 없이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며 ”당분간 정상적인 국회 운영은 보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